미국과 이란 간 군사 대치 상황이 심화하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 전략도 점차 선명해 지고 있다. 경제제재에 그치지 않고 군사 옵션 사용 가능성 마저 열어 놓은 것은 이란의 핵개발 포기 이상의 목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중동 지역 내 패권을 이 참에 눌러놓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5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합의(이하 핵합의)’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경제 제재를 부활시켰을 때 이란의 완전한 핵개발 포기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대체적 해석이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 어디에도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합의 탈퇴를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이후 이란산 원유 수출 봉쇄 등 점차적으로 경제재재 수위를 높여온 미국은 최근 항모 전단과 폭격기까지 걸프만에 배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방문 중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란과의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 “이란이 정상적인 국가처럼 행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략자산 배치가 실제 침공을 위한 게 아니라 ‘무력 시위’라는 뜻이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비핵화 재협상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해온 이란의 힘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사실상 격퇴한 데 이어 이란까지 강력하게 견제해둘 경우 미국의 중동권에서의 영향력은 더욱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이란에 대한 직접 침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미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스라엘 등의 군사력을 동원해 예멘 후티 반군 등 친(親) 이란 세력에 대한 대대적 군사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미국은 지난해 핵합의 탈퇴 뒤 이란에 제시한 12개 요구사항에서 “이란의 테러 단체들에 대한 지원과 시리아 문제에 대한 개입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목표로 둘 경우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전면전도 불사할 수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네오콘(신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매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력 사용 결단을 부추기고 있다는 미 언론들의 최근 보도도 이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에서 재임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선택지를 고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중동지역 민간인들의 막대한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전쟁을 벌일 정도의 정치적 명분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동연구소의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야 말로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이란 레짐 체인지를 위한 미국의 치밀한 계획 같은 것은 당장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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