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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냐… 뇌가 썩었다” 멈추질 않는 직장 내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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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냐… 뇌가 썩었다” 멈추질 않는 직장 내 막말

입력
2019.05.19 16:26
수정
2019.05.19 20:5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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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갑질 119, 4개월간 제보서 ‘막말 40선’ 발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네가 인간이냐. 노동청 찾아가지 왜 여기 왔어 XX놈아. 사직을 하려면 30일 전에 통보하게 돼 있어. 그러니까 나이 삼십 다 처먹어서 그렇게 사는 거야. 꺼지고 신고해.”

한 동물병원 대표는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직원 A씨에게 이처럼 욕설이 뒤섞인 폭언을 쏟아냈다. 상습적으로 모욕을 퍼붓고 야간수당도 없이 부려 먹는 등 대표의 갖은 ‘갑질’에 A씨는 다른 동료와 함께 30일 전 사전고지 없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사전고지를 꼬투리 잡은 대표는 되레 나오지 않은 일수만큼 계산해 고소하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ㆍ산업안전보건법ㆍ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 예정이지만 직장 내 살벌한 막말은 그대로다.

노동ㆍ인권단체 ‘직장갑질 119’는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4개월간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중 A씨 사례를 비롯한 직장 내 막말, 모욕, 갑질 사례 40선을 추려 19일 발표했다. 하루에 약 60건의 갑질 제보가 접수됐는데, 이중 모욕과 막말 등 직장 내 괴롭힘이 15% 정도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막말 유형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혐오 섞인 폭언이다. 한 회사의 경리 직원은 “개돼지 같은 년, 경리하는 년이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고 XX이야” 같은 폭언을 2개월 동안 매일 들었고, 옷을 붙잡고 밀치는 물리적 폭력도 당했다고 호소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눈물을 흘리자 “지금 쇼하냐, 너는 뇌가 썩었다, 요망하다”는 막말까지 튀어나왔다.

성희롱 제보도 다수를 차지했다. “돈 벌고 싶으면 다리 벌리고 다녀라” “나랑 술 마실래? 야근할래?” 등의 발언을 거리낌없이 하는가 하면, “B가 총각이니까 가끔 좀 만져주고 그래”라는 상사의 말에 또 다른 상사인 B씨가 실제로 팔로 신체 접촉을 한 사례도 접수됐다.

학력과 장애인에 대한 비하 섞인 모욕도 여전했다. “너한테 뭘 바라냐, 고졸이랑 다를 바 없다”며 한 자리에서 ‘병신’이란 욕을 5번이나 퍼부었다는 제보도 있었다. “선생님들이 업무를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지방대를 졸업했기 때문” “회사 규정에 심신이 미약한 자는 입사가 안 되는데 와이프가 장애가 있지 않느냐?”며 괴롭힌 상사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 관련 기관의 상사가 장애인이 옆에 있는데도 모두가 듣도록 “야, 너 정신지체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 “뺨싸대기를 때려도 내가 사과한다면 나를 용서해주고 같이 갈 수 있는 가족 같은 사람을 원해” “칼을 항상 갖고 있으니 반대 의견을 말하려면 그걸 상기하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 같은 협박성 발언도 비일비재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해 말 통과된 이후에도 직장 내 일부 상사들의 의식은 전혀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직장갑질 119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퍼붓거나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비유와 막말로 인간성을 파괴하는 갑질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개정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 필수 기재사항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포함하도록 했지만 행위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고, 가해자가 대표일 경우에도 대표에게 신고해야 하는 등의 한계가 있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때문에 개별 기업들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는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래’ ‘월급엔 욕 먹는 값도 포함 된 거야’ 같은 인식 탓에 우울증에 걸려도 말 못 하는 피해자들이 많다”며 “모욕죄로 고소해 봐야 초범이면 기소유예나 벌금이 대다수이고, 7월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돼도 가해자를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현재로서는 사내 취업규칙을 통해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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