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1> 죽음으로 내몬 동료의 성폭력
독일은 월급 받으면서 근무 정지… 한국도 산안법에 명시돼 있지만 조항 모호
국내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당국이나 기업들이 적절한 대응 없이 2차 피해를 방치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2017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로 하여금 성희롱 피해자에게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의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물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업주가 법이 정한 과태료나 벌금 정도만 내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경우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독일에서는 ‘일반적동등대우법’ 제14조에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작업거부권(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지영 당시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은 발표자료를 통해 “독일의 작업거부권은 피해자가 자신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한 임금을 받으면서 근무를 정지할 권리를 의미한다”라며 “작업거부권 행사의 요건이 충족돼 근로자가 행사하는 경우 사용자는 이를 이유로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독일의 작업거부권 행사의 요건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그러지 않거나 명백히 부적절한 조치를 취한 경우이다. 둘째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다른 여타의 조치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을 때 근로자 보호를 위해 작업거부가 허용된다.
우리나라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26조에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있긴 하다. 즉 현행법에 따라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으로 인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고, 사업주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한 근로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산안법 개정법률에는 작업중지 판단 기준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로 강화된다. 노동자의 주관적 판단에 좀더 힘을 실어 준 것이지만,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조항은 직장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될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급박한 위험은 사업장마다 상황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정할 수도 없다”라며 “성폭력도 급박한 위험이라면 근로자가 대피할 수는 있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봤을 때 합리적인 이유인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지영 연구위원은 발표자료에서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해서 직장 내 성희롱을 산재 위험요인으로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산안법에는 이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라며 “급박한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은 누가하며, 대피 후 작업재개의 조건과 판단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고 직장 내 성희롱이 ‘산안법 4장 재해ㆍ건강장해 예방’에 명시되지 않은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성희롱으로부터 인격침해와 재해를 겪기 전에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이진희기자 river@hankookilbo.com ㆍ조희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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