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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불기소 처분… 법망 빠져나가는 ‘상담실 성범죄’

입력
2019.05.23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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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의 악마, 그루밍 성폭력] <중> 진료실을 파고드는 검은 손길

[저작권 한국일보]김영진 의원 발의 상담실 내 성범죄 처벌 조항 / 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김영진 의원 발의 상담실 내 성범죄 처벌 조항 / 김경진기자

지금까지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상담실 내 성범죄’ 사건들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되거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현행 형법이나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등에 불평등한 심리 치료 관계를 고려한 처벌 조항이 없어서”라고 지적한다.

가령 지난 2016년 3월 내담자들과 성관계를 맺고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지인에게 보여준 혐의를 받았던 유명 심리상담사 A씨에 대해 검찰은 준강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준강간죄라면 피해자가 ‘심신미약’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내담자의 심리적 의존 상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A씨는 카메라등이용촬영 등 혐의로만 기소됐고, 이마저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준강간죄가 안 된다면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어떨까. 이 죄는 관리감독자의 위계나 위력 행사가 있었다면 성립한다. 유명 정신과 B원장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폭력 사건을 집중 연구하면서 ‘성폭력범죄의 행태 태양에 대한 연구 –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내놨던 김슬기 대전대 법학과 교수는 법의 재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준강간의 경우 “법원 판례상 심신미약이나 항거불능은 술이나 약, 잠에 취한 경우 등을 지칭하기 때문에 심리적 의존은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가능성 있을까. 심리적 의존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관계에 대한 ‘동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도 그리 높진 않다. 김 교수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업무상 상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라 상담자와 내담자, 의사와 환자 사이를 그런 관계로 볼 수 있을 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래서 ‘상담실 내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주마다 세부적 법률상 차이가 있지만 내담자의 동의를 정상적 동의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다 ‘정신적ㆍ심리적 질병 또는 장애로 인한 자문, 치료 또는 보호를 위탁받은 사람이 자문, 치료 또는 보호 관계를 이용하여 간음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넣은 형법 개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김 교수는 “법 개정 못지 않게 사법부 또한 심리적 의존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판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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