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서적서 양조 비법 찾아내 생산… 칼스버그ㆍ하이네켄과 제휴해 판매키로
“220년 전 사라진 중세 시대 맥주의 맛, 이제 현대인도 느껴 보세요.”
지난 21일(현지시간) 벨기에 수도 브뤼셀 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흐림베르헌시(市)의 흐림베르헌 수도원. 마르크-앙투안 젤레스라흐 시장과 취재진 120명이 모인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9세기 때부터 자취를 감춘 중세 시대 맥주가 ‘그때 그 시절’의 양조 기법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서 수도원 부원장인 카렐 스타우테마스 신부는 “과거 (이 자리에 있던) 노르베르틴 수도원 수도사들의 맥주 양조 비법에 대해 4년간 수행한 연구의 정점”이라면서 부활한 ‘중세 맥주’를 소개했다. 가디언은 “맥주를 사랑하는 나라인 벨기에의 국민들에겐 대단한 희소식”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스타우테마스 신부가 설명한 중세 맥주의 부활 과정은 이렇다. 1128년 설립된 노르베르틴 수도원에 있던 맥주 양조장은 맛있는 맥주의 생산지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1798년 프랑스 군대에 의해 불타 버린 뒤 더 이상 맥주를 만들지 못했다. 수도원 자체는 복원됐어도, 양조장과 맥주 제조법이 담긴 기록물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문헌 하나가 발견되면서 길이 열렸다. 수도원이 소실되기 전, 누군가가 도서관 벽에 구멍을 뚫고 숨겨 둔 12세기 서적에 당시 맥주 양조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스타우테마스 신부는 “옛 라틴어와 옛 네덜란드어로 적혀 있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결과, 수세기 전 맥주의 성분, 사용된 홉의 종류, 제조 과정에 쓰인 통과 병의 종류 등을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벨기에 수도사들이 재연한 맥주가 과거 그것과 완전히 똑같진 않다. 수도원 양조장 책임자인 마르크 앙트완 소천은 “당시 맥주는 무(無) 맛에 가까웠고, 액체로 된 빵 같았다”고 했다. 현대인들이 좋아할 맛은 아니라는 뜻이다. 때문에 수도사들은 중세의 제조법 중 △인공첨가물 배제 △목재 통, 특정 지역 토양 사용 등 일부만 활용했다. 스타우테마스 신부는 “우리가 실제로 배운 건 과거의 수도사들이 10년마다 제조법을 바꾸며 혁신을 계속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생산된 맥주의 알코올 농도는 10.8도. 일반 시판 맥주(4도 안팎)의 두 배 이상이다. 수도원 양조장은 매년 330만병의 맥주를 생산, 대부분 벨기에와 프랑스 시장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글로벌 맥주 업체인 칼스버그, 하이네켄의 벨기에 판매법인인 알켄 마스 등과도 협력하지만, 대기업에 합병될 생각은 없다. 스타우테마스 신부는 “흐림베르헌 맥주의 로열티는 수도사들의 성지 순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원조 등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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