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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대 그 소품] 피아노, ‘스타인웨이’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입력
2019.05.23 04:40
수정
2019.06.02 15:5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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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소품을 눈 여겨 본 적 있나요? ‘공연 무대에서 쓰이는 작은 도구’를 뜻하지만,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품으로 공연을 읽어 보는 ‘그 무대 그 소품’이 격주 목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 옵니다.

영화 '그린북' 속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아니면 연주를 하지 않는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사의 피아노는 현실에서도 절대 다수 피아니스트들의 사랑을 받는다. CJ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그린북' 속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아니면 연주를 하지 않는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사의 피아노는 현실에서도 절대 다수 피아니스트들의 사랑을 받는다. CJ아트하우스 제공

“도착하면 제일 먼저 공연장에 가서 피아노부터 확인해요. 계약 대로 스타인웨이인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그린북’ 속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대사다. 그는 스타인웨이가 아니면 연주를 하지 않는다. 스타인웨이의 독보적 위상을 보여 주는 설정이다.

스타인웨이는 미국 뉴욕과 독일 함부르크에 기반을 둔 피아노 명가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사에서 만든다. 백건우를 비롯해 마르타 아르헤리치, 랑랑, 예브게니 키신 등은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라 불린다. 연주회에서 스타인웨이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깐깐함으로 이름을 떨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1989)와 글렌 굴드(1932~1982)도 스타인웨이 ‘덕후’였다. 굴드는 특정 도시가 보유한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품질로 그 도시의 품위를 평가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연주할 곡의 성격에 맞는 음색이다.소리의 강도도 살핀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는 다른 악기들을 뚫고 나오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들을 두루 갖춘 것이 스타인웨이 피아노다.

6년 간 피아노 연주를 중단했던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일본 가와이 사의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로 인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6년 간 피아노 연주를 중단했던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일본 가와이 사의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로 인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그러나 비주류 취향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 ‘비(非) 스타인웨이’ 파 연주자도 적지 않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6년부터 약 6년 간 피아노 연주를 중단하고 지휘에 매진했는데, 이유는 “현대 피아노의 음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장을 다시 피아노 의자에 앉게 한 건 일본 ‘가와이’사의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였다. “아마추어와 전문 비행사는 똑 같은 비행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문 비행사에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으며, 놀라운 곡예를 보여줄 수 있는 비행기가 필요하다. 나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플레트네프는 역동적으로 조종 가능한 시게루 가와이의 음량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다음달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여는 그는 이번에도 시게루 가와이 피아노를 요청했고, 기획사는 국내에 몇 대 없는 이 피아노를 구하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201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이 콩쿠르에서 스타인웨이가 아닌 야마하 피아노로 우승한 첫 연주자다.
2010년 쇼팽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이 콩쿠르에서 스타인웨이가 아닌 야마하 피아노로 우승한 첫 연주자다.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2010년 쇼팽콩쿠르에서 두 가지 기록을 썼다. ‘45년 만에 탄생한 여성 우승자’, 그리고 ‘야마하 피아노로 우승한 최초의 연주자’. 음색이 가볍고 투명한 야마하는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는 피아노다. 정명훈과 안드라스 쉬프는 오스트리아산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종종 선택한다. 저음 건반을 늘려 건반 92ㆍ97개짜리 피아노를 생산하는 회사다. 피아노 건반은 원래 88개다.

피아노도 부침을 겪는다. 피아노 음색의 트렌드가 바뀌며 사라진 피아노도 있다. 프랑스의 플레옐은 1800년대 쇼팽의 피아노로 유명했다. 리스트, 라벨, 스트라빈스키도 작곡할 때 사용했다. 피아니스트들에게 서서히 외면 받은 플레옐은 누적된 적자로 2013년 폐업했다.

여전히 대세는 스타인웨이다. 국내에선 예술의전당 음악당과 롯데콘서트홀이 스타인웨이를 7대와 4대씩 갖고 있다. 경기도문화의전당도 2017년 음악당을 재개관하며 스타인웨이 2대를 구입했다. 공연장에 들일 피아노 선택을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맡기는 관행도 있다. 롯데콘서트홀과 경기도문화의전당의 피아노는 손열음과 임동혁이 각각 고른 것이다. 둘은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본사를 방문해 연주해 본 뒤 피아노를 낙점했다.

임동혁은 “연주자가 피아노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힘을 넣은 만큼 소리를 돌려주지 않을 때인데, 역시 새 피아노 소리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피아노의 수명은 15년 남짓이다. 현악기보다 짧다. 건반 등이 마모되는 소모품이기 때문이다.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의 스타인웨이 4대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독일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본사에서 직접 고른 것이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의 스타인웨이 4대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독일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본사에서 직접 고른 것이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연주 때 쓸 피아노를 ‘섭외’하는 건 원칙적으로 공연장이나 기획사의 몫이다. 연주자가 직접 피아노를 공수하기도 한다. 크리스티엔 지메르만이 지난 3월 대구와 인천에서 연주한 피아노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운반해 간 피아노였다. 조율에도 능한 지메르만은 개인 소장품인 액션(건반에 가해진 힘을 해머로 전달하고 현을 진동시키는 연동 장치)을 피아노에 설치해 연주할 정도로 프로의 모습을 보여 줬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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