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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칼럼] 우리 죽, 글로벌 혁신 식품이 되다

입력
2019.05.2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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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알 차이나에서 2019 올해의 혁신식품 동메달을 수상한 한국의 ‘리얼죽’.
시알 차이나에서 2019 올해의 혁신식품 동메달을 수상한 한국의 ‘리얼죽’.

시알(SIAL: Salon International de l’alimentation)은 프랑스에 본부를 둔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 박람회 네트워크다. 1964년 처음 파리에서 개최되었고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큰 시장을 가진 중국 상하이에서 시알 차이나(SIAL China)라는 이름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5월 14일부터 사흘간 개최된 시알 차이나에서는 70개국에서 무려 4,300개 식품 업체가 참여하여 거대한 중국 시장을 뚫고 들어오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

시알 파리와 시알 차이나에서는 각각 전 세계 각 국가에서 출전한 식품들을 심사를 하여 최고의 혁신 식품 3점을 선정하여, 금, 은, 동메달을 수여한다. 그 주요 평가 기준은 최근 2년 이내에 출시된 식품으로서 어떤 새로움을 가지고 있는지, 그 새로움이 요즘 트렌드를 작 녹여 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식품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한 중소기업의 즉석 죽 제품이 올해 시알 차이나에서 혁신식품상 동상을 차지했다.

시알 차이나 2019 올해의 혁신식품상 심사위원회가 최종으로 개최되었던 한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이 날에는 예선 과정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수십여 점의 식품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마지막으로 까다롭게 논의하고 비밀 투표를 통해 파이널 탑 10 제품을 선정하고, 또 그 안에서 최고 점수를 받 금, 은, 동 제품을 선정하는 날이다. 금, 은, 동 제품의 결과는 심사위원들도 본 행사에서 시상식이 진행되기 전까지 알 수 없도록 철저한 보안을 한다.

심사위원회는 전 세계 식품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비밀리에 심사를 진행한다. 후보 제품을 차례대로 회의를 하며 진행하는데, 여덟 번째쯤 한국의 즉석 죽제품이 올라왔다. 푸디스트리라는 작은 회사가 출전한 ‘리얼죽’이라는 제품으로 마트와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제품이었다. 하얀색 직사각형 형태의 파우치에 들어가 있는 즉석 죽으로 단호박, 자색 고구마 & 바나나, 구운 고구마 등의 종류가 있었다. 이 죽이 한국 제품이라는 것을 확인한 각 국의 심사위원들이 한국에서 온 심사위원인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였다.

나는 심사위원으로서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철저히 중립적으로 설명했다. 일단 이런 즉석 죽 제품은 한국에서 새로운 제품은 아니며, 주로 아침식사 대용을 타겟으로 나온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죽은 아시아에서 전통적인 음식으로 주로 쌀로 만들지만 호박이나 다양한 서류(薯類)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이 죽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그냥 전자레인지에서 간단히 덥힌 후 바로 뚜껑을 열고 빨아먹으면 된다고 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뛰어나가며, 혹은 직장에 도착해서 간단히 먹도록 하는 것이 이 제품의 컨셉이라고 했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는 내용인데, 몇몇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또 몇몇 심사 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진솔하게 이 제품을 평가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상해 국제 전시장에서는 올해의 혁신 식품상 발표 및 수상 행사가 있었고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올해의 혁신식품 동메달 수상에 한국의 ‘리얼죽’이 선정되었는 발표에 제조사 사장님과 직원분들은 기뻐하며 동시에 당황해했다. 실은 태연한 척했지만, 나 역시 매우 놀라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수상식 후 나는 중국, 홍콩, 프랑스에서 온 심사위원들에게 왜 이 제품이 동메달을 받은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재밌는 답변들이 나왔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좋은 원료를 쓴 전통적인 제품을 아주 미니멀하면서도 깔끔하고 현대적인 포장으로 포장했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훌륭한 건강식이며, 이 상태 그대로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내가 이 제품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흔해 보이는 이 파우치 포장은 다른 나라의 부스에서는 별로 보지 못한 매우 한국스러운 디자인이고, 구운 고구마와 호박으로 만든 죽은 이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재료일 수 있겠구나. 조리 없이 이동 중에 식사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에겐 신기한 개념일 수 있겠구나. 이런 깨우침이 다가왔다. 아, 우리 식품도 그 자체로 이미 이렇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구나.

2018년 시알 파리에서는 국내 중소 농업회사법인이 개발한 김치잼이 혁신식품상 스위트 푸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역시 심사위원이었던 나는 오히려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는데, 외국 심사 위원들은 매우 높이 평가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중에 물어봤더니, 외국인 입장에서 집에서 김치를 먹을 수 있고, 그것도 편리하게 장기 보관하며 빵이랑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혁신적인 지 그걸 모르겠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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