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컬렉터 박영택 교수의 수집기
‘덕질’에는 수많은 장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종목은 ‘고미술품 수집’이다. 장식품부터 가구, 도자기, 심지어는 상여에 꽂는 꼭두까지 관심 가질 만한 품목이 수만가지다. 전국 곳곳의 골동품 가게를 꼼꼼히 뒤지는 수고는 기본이요, 미술품의 가치를 알아채는 안목은 오랜 시간을 들여 단련해야 하는 기술이다. 품이 많이 드는 만큼 한번 매료되면 끝이 보이지 않아 ‘덕질계의 블랙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미술품 수집가들은 “골동품에서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끝만 스쳐도 심장이 뛴다”고 말한다.
‘앤티크 수집 미학’은 고미술품 컬렉터로 이름 난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의 수집기다. 수집품 60점을 골라 소개한다. 유물 하나하나의 특색과 역사적 사연, 발견하고 구매하게 된 일화 등이 고루 담겼다. 부모가 자식 사랑을 늘어놓는 듯, 수집품을 묘사하는 글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박 교수는 서울 인사동을 비롯해 전국의 골동품 가게와 박물관을 순례한다. 찾아낸 수집품은 제주 동자석부터 젓갈단지까지를 넘나든다. ‘수집의 이유’도 가지가지다. 토기 잔의 손잡이 형태에 매료돼 물결 모양, 직각 모양, 고사리 모양 손잡이 토기를 잇따라 사들이는가 하면, 무심한 맛이 좋아 오래된 안마용 몽둥이를 산다. 어떤 것은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것은 너무 평범해서 사 모은다.
언뜻 보기엔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들에서 박 교수는 무엇을 발견하는 걸까. 그는 “일상에서 수습한 온갖 기호학적 파편들에서 생명의 기미를 찾아내는 게 수집의 출발”이라고 정의한다. “일상의 사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 현재의 시간 위로 호명돼 이른바 ‘기억의 화석’이 된 것들이다. 그 화석은 단지 지난날의 시간과 추억을 응고한 채 닫힌 형태로 마냥 어두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시절을 현재의 시간 위로 방사하고 환하게 밝혀주며 지속해서 살아나는 것이 된다.”
박 교수를 따라 골동품 하나하나의 조형미를 정성스럽게 탐닉하는 경험이 충만하다. 미술평론가답게 다양한 미학적 표현을 동원해 골동품의 구석구석을 읽는다. 양손잡이 토기잔 표면에 그어진 선에서 화가 박서보의 대표작 ‘묘법’을 떠올린다든가, 분청사기귀얄무늬 접시에서 추상표현주의화가 윌렘 데 쿠닝이나 로버트 머더웰을 마주하는 식이다. 옛 생활상을 자연스레 그려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타구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침이나 가래를 뱉어 낼 때 사용한 위생 용구다. 입구는 넓고 몸통은 손으로 잡기 쉽도록 잘록하게 만들었다. 책은 사랑방에서 책을 읽다 무심하게 타구를 집어 드는 어느 선비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앤티크 수집 미학/박영택 지음/마음산책 발행ㆍ352쪽ㆍ1만6,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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