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해외동포의 대사가 아니다. 미국의 대규모 창고형 매장 ‘코스트코’의 공동 설립자 짐 시네갈이 2011년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유난한 ‘코스트코 사랑’에 감사하며 전한 말이다. 전 세계 점포 700여 곳 중 매출 1위가 ‘한국의 양재점’이라고 하니 눈물이 날 만하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한국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지 싶다. 전 세계에서 팔린 그의 책 중 절반 가까이가 한국에서 팔렸다. 베르베르는 한국인이 유난히 사랑하는 작가다. 베르베르 책의 국내 판매량은 무려 1,200만권. 데뷔작 ‘개미’부터 ‘신’ ‘뇌’ ‘나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까지, 숱한 베스트셀러를 ‘제조’했다. 베르베르는 ‘친한파 작가’로 불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에 한국을 자주 등장시키고, 국내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한다.
죽음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ㆍ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각 328쪽ㆍ각 1만 4,000원
베르베르는 한국 독자들에게 또 다시 환영 받을까. 그의 새 장편 ‘죽음’이 나왔다. 지난해 나온 장편 ‘고양이’에 이어 1년 만이다. 베르베르는 개미, 고양이, 천사, 신 등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설정을 즐겨 쓴다. 이번에는 ‘영혼’의 눈으로 인간을 관찰한다.
소설의 줄기는 이렇다. 죽음에 관한 장편소설 출간을 앞둔 인기 추리작가 ‘가브리엘 웰즈’는 갑자기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다. 추위를 느낄 수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없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피부를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 그는 죽은 거였다. 망연자실한 웰즈의 앞에 영혼과 대화가 가능한 영매 ‘뤼시’가 등장한다. 자신이 살해됐다고 확신한 웰즈의 영혼은 뤼시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웰즈는 죽고도 죽지 못한다. 웰즈의 책을 전담 출간한 출판사가 ‘가브리엘 웰즈 버추얼’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AI)을 만든다. 강연록과 메모, 이메일 등 웰즈가 남긴 모든 기록이 입력된 ‘웰즈 AI’는 꼭 웰즈처럼 글을 쓴다. 웰즈가 죽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한 소설까지 다시 쓴다. 출판사의 비윤리적 시도는 과연 성공할까. 결말은 ‘AI가 쓰는 소설은 진짜 소설인가’에 대한 베르베르의 답이라고 볼 수 있다.
새 소설엔 베르베르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겼다. 웰즈는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꾼이었으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주간지 기자로 다양한 기획 기사를 쓰다가 데뷔한 작가다. 베르베르의 이력과 고스란히 겹친다. 웰즈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매년 꾸준하게 신작을 발표하고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장르소설 작가이지만 평단에선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다. 역시 베르베르를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문단이) 나를 명예와 돈만 좇아 글을 쓰는 소설가 나부랭이에 삼류 작가로 폄하했다”는 소설 속 대사는 베르베르의 울분에 찬 말일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한국인의 베르베르 사랑은 계속되는 듯하다. ‘죽음’은 예약 판매만 시작하고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고양이’ 예약 판매량의 세 배 넘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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