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 정신에서 이성만큼이나 감정도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며 감정을 이성과 동등한 반열에 올렸다. 하지만 감정은 여전히 ‘열등하며 나약한 그 무엇’이다. 감정 발산을 병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슬퍼하면 우울증, 기뻐하면 조증, 불안해하면 불안증, 화를 내면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른다. 이상적이고 완벽한 건 역시나 이성뿐이다.
세계적 신경과학자이자 감정 연구 권위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76)는 저서 ‘느낌의 진화’에서 감정의 위상 회복을 주장한다. “인류의 진화를 이끈 것은 이성이 아닌 느낌”이라는 게 책의 논지다. 그는 ‘스피노자의 뇌’(2003) ‘일어난 일에 대한 느낌’(1999) ‘데카르트의 오류’(1994) 등 ‘감정 연구의 3부작’에서 ‘이성 대 감성’ ‘신체 대 마음’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논파했다. ‘느낌의 진화’는 학계에서 다마지오 감정 연구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마지오는 “태초에 느낌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성도 유전자도 생기기 이전에 ‘느낌’이 생명 활동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존재했다는 주장이다. 뇌도, 세포 핵도 없는 단세포동물 박테리아가 수십 억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느낌’ 덕분이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느낌이 어떻게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걸까. 인간의 몸은 건강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성을 작동시킨다. 느낌은 이 항상성의 상태를 살피고 알리는 감시병이자 대리인의 역할을 하며 생명 활동을 돕는다. 항상성이 부족하면 고통스럽고 우울한 느낌이 신호를 보낸다. 반대로 행복과 안정을 느끼고 있다면 항상성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다마지오의 ‘느낌 예찬론’은 멈추지 않는다. 느낌과 항상성은 생존의 도구를 넘어 문화를 촉발하는 핵심 기제였다는 가설을 세운다. “좀 더 편안하고 좋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는 느낌”이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 뒤 삼라만상이 느낌에서 탄생했다는 주장까지 뻗어나간다. “느껴지지 않는 삶에는 치료가 필요 없다. 느껴지지만 진찰되지 않는 삶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지성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배들을 출항시키고 항해시켜온 것은 느낌이다.”
예컨대, 인간이 마취약을 개발한 건 수술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불을 이용하고 바퀴를 발명한 것도 안락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행동이었다. 종교, 정치, 예술, 철학, 과학 역시 인간 내면의 불안을 끊어내고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공포를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느낌 창조론’이라 불러야 할 듯싶다.
그러나 ‘느낌으로’ 만들어진 문화와 제도가 늘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지는 의문이다. 다마지오도 이 대목에서 자신이 없는 듯 하다. 그는 공산주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공산주의는 불평등을 없애고 사람들의 항상성을 키우려고 만들어졌지만 빈곤은 심화됐고 항상성은 감소했다.
책의 감수와 해제를 맡은 박한선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 제도와 문화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성보다 감정에 좀 더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 책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맹신하지 말고, ‘감정에도 물으라’는 것이다.
느낌의 진화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ㆍ임지원 고현석 옮김ㆍ박한선 감수 해제
아르테 발행ㆍ392쪽ㆍ2만8,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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