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콩국수에 한 숟갈 
 소금ㆍ견과류보다 효율적 
땅콩버터는 그냥 퍼먹어도 맛있는 일종의 비상 식량과도 같다. 고를 때는 지방 함유량, 질감, 당밀 함유 여부 등을 따지면 성공 확률이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속된 마감으로 부득이하게 야근한 어느 늦은 밤, 갑자기 배고픔이 몰아쳤다. 장을 볼 여력이 없어 집에는 마땅한 간식 거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배고픔을 끌어 안고 일을 계속 해야 하는가. 서러움에 눈물이 맺히려는 찰나, 언제 사다 두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땅콩버터가 한 통 있다는 게 기억났다. 딱 두 숟가락을 퍼먹으니 맺히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다시 일할 의욕이 생겼다. 그렇게 야근을 무사히 마쳤다. 

 ◇땅콩버터 먹기 전 기름층 분리 여부 따져봐야 

일종의 비상 식량 개념으로 땅콩버터 한 통쯤 갖춰 두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단백질과 지방이 넉넉해 느닷없이 찾아오는 배고픔에 대처하는 데도 쓸모 있으며, 샌드위치는 물론 다른 음식의 바탕이나 양념에도 두루 쓰인다. 식물성 단백질이니 채식 식단에도 유용하다. 흔하고도 그게 그거 같은 음식(혹은 식재료)가 땅콩버터이지만 나름의 고르는 요령이 있으니,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요령은 일종의 입장 정리이다. 땅콩의 지방 함유량은 44~56%이다. 말하자면 기름기가 많아서 상온에 두면 곧 맑은 기름 층이 분리되어 위로 떠오른다. 실제로 판매되는 제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분리를 막고자 땅콩버터에는 일반적으로 경화유지(Hydrogenated fat)를 첨가해 왔다. 식용유처럼 상온에서 원래 액체 상태인 지방에 수소를 첨가(Hydrogenation)하면 불포화지방의 일부가 포화지방으로 바뀌면서 고체 상태로 바뀐다. 말하자면 식용유가 마가린이 되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나쁜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켜 심장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트랜스지방이 생성된다. 땅콩버터에도 경화시킨 면실유나 야자유를 쓰니 건강에 나쁘지 않겠느냐는 멍에가 항상 딸려 다녔다. 

기름이 포함되지 않은 자연 땅콩버터는 지방이 금방 분리돼 빵에도 잘 발리지 않는 딱딱한 덩어리로 남아 처치곤란의 상태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트랜스지방으로 인한 건강 우려를 덜어준다는, 경화유지를 포함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땅콩버터가 시장에 등장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고급 식품 전문점에서는 땅콩버터를 즉석에서 직접 갈아 살 수 있는 장비까지 들여 놓았다. 스위치를 누르면 꾸물꾸물 갈려 나오는 땅콩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으면 끝이다. 얼핏 생각하면 맷돌로 갓 갈아 낸 콩비지처럼 신선해서 좋을 것 같고 실제로도 맛은 좋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땅콩의 지방이 분리되는 것은 물론 곧 시큼하게 산패해 맛도 떨어진다. 즉석이 아닌 ‘자연’ 땅콩버터도 마찬가지라서 분리된 기름 층과 더불어 위쪽을 먹고 나면 아래쪽은 빵에도 잘 발리지 않는 딱딱한 덩어리로 남아 처치 곤란의 상태로 전락한다. 더군다나 땅콩버터는 뻑뻑한지라 집에서 주걱 같은 것으로 휘젓는다고 다시 섞이지도 않는다. ‘이왕이면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시도해 보았지만, ‘자연’스러운 땅콩버터는 단 한 번도 끝까지 먹은 적이 없다. 

이처럼 자연스러움과 맞바꾼 불편함과 비효율이 결국은 땅콩버터의 발목을 잡아, 요즘은 유기농을 표방하며 자연스러움 혹은 고급스러움을 내세우는 제품도 분리를 막아주는 면실유(물론 유기농) 등의 수화 지방을 첨가한다. 마트는 물론 각종 직접 구매 사이트를 통해서도 경화유지 첨가 혹은 무첨가 제품을 다 구할 수 있으므로 땅콩버터를 먹는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입장 정리를 할 때가 찾아온다. 수화지방의 힘을 빌려 분리가 안 되는 제품과 더 ‘자연’스러운 것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웬만하면 소에 대한 질문을 받는 황희 정승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고 입장을 밝히고 싶지만 오랜 세월 온갖 땅콩버터를 먹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삼는다면 그러기가 어렵다. 땅콩버터 자체의 맛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기름 층이 분리되면 먹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 못마땅할 수는 있겠지만 웬만하면 일관성 있는 부드러움을 끝까지 고수하는 수화지방 첨가 제품을 권한다. 참고로 땅콩버터의 수화지방 비율은 무게 대비 1, 2%이니 1일 섭취 권장량인 32g에는 최대 0.0032g이라는, 무시할 수 있는 양이 첨가되는 셈이다. 

매끈하게 잘 발리는 ‘크리미’ 땅콩버터. 게티이미지뱅크
 
자잘하게 부순 땅콩 알갱이가 들어 있는 ‘크런치’ 땅콩버터. 게티이미지뱅크
 ◇맛과 질감, 당밀 함유도 따져야 

입장을 정리했다면 이제부터는 한결 쉽다. 땅콩버터를 고르는 두 번째 요령은 맛 혹은 질감의 선택이다. 땅콩버터의 세계는 크게 ’크리미(Creamy)’와 ‘크런치(Crunch)’의 둘로 나뉜다. 말 그대로 크리미는 맺히는 구석이 전혀 없이 매끈한 땅콩버터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런치에는 자잘하게 부순 땅콩 알갱이가 섞여 있다. 과연 둘 사이에서도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일단 ‘크런치’에게는 확실한 단점이 있다. 이름처럼 땅콩 알갱이가 아삭하게 혹은 바삭하게 씹히지 않으며, 치아 사이에 끼는 등 먹는데 번거로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열량과 지방, 설탕, 탄수화물 함유량이 모두 같은 가운데 ‘크런치’에 ‘크리미’보다 포화지방이 조금 적고 섬유질도 2% 많다. 참고로 땅콩버터 강국인 미국의 땅콩협회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60%가 ‘크리미’를 선호한다니, 참고해 6:4의 비율로 번갈아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당밀과 소금이 들어간 땅콩버터가 덜 느끼하고 더 맛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세 번째 요령은 정말 자질구레하다. 땅콩버터의 당밀 함유 여부이다. 당밀이라면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검고 끈적한 액체인데, 땅콩버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원료인 땅콩에 비해 살짝 더 두드러지는 쓴 맛과 향이 당밀의 맛 및 향과 죽이 잘 맞아 조금 덜 단조롭다. 말하자면 당밀이 일종의 조미료 역할을 하는 형국이라 빠질 경우 땅콩버터의 정통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분명히 차이는 존재한다. 대안으로 꿀을 섞은 제품도 있는데, 더 고급스러워서 좋을 것 같지만 맛은 당밀을 쓴 게 낫다. 아, 마지막으로 소금간이 여유롭게 된 땅콩버터가 덜 느끼하고 더 맛있다. 

상큼하고 아삭한 사과를 부드럽고 고소한 땅콩버터에 찍어 먹으면 균형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땅콩버터 즐기는 법 

나름 고민을 거쳐 땅콩버터를 골랐다면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다. 우리 모두 왕도는 이미 알고 있다. 재고 따지고 할 것 없이 그냥 퍼먹기 말이다. 노파심에서 한 두 마디 보태자면 웬만하면 손가락보다는 숟가락을 쓰고, 한 번 입에 들어갔다 나온 숟가락으로 다시 퍼먹지 말자. 장기적인 쾌락을 위한 포석이다. 한편 장의 식문화가 발달한 우리라면 땅콩버터를 일종의 양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점성을 갖췄으니 다른 식재료를 찍어 먹어도 맛있다는 말이다. 자체의 맛이 썩 뛰어나지 않다거나 간이 안 맞는 식재료에 장처럼 맛의 방점을 찍어준다. 

아무래도 단맛 위주로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사과가 가장 고전적인 조합이다. 비타민이며 미네랄 등의 고른 섭취 등이 장점이라고 하는데 굳이 영양소까지 파헤치지 않더라도 둘을 같이 먹으면 그냥 맛이 있다. 땅콩의 고소한 맛과 풍성한 질감이 신맛을 포함한 사과의 상큼함 및 아삭함과 어우러져 상대방의 균형을 잘 잡아주니 둘 가운데 어느 한 쪽만 먹으면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크게 덜어준다. 사과 같은 과일이 잘 어울린다면 아삭한 채소류도 안 맞을 이유가 없으니, 여름을 맞아 맛이 상승세인 오이나 씹느라 열량이 되려 소모되는 셀러리처럼, 향 탓에 호불호가 갈리는 채소를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땅콩버터가 거들어 준다.

땅콩버터에 마늘, 간장, 라임즙, 액젓 등을 넣어 쌈장처럼 만들어 꼬지를 찍어먹는 것도 땅콩버터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월남쌈을 땅콩버터에 찍어 먹는 것은 쌈에 능숙한 우리에게는 익숙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땅콩버터를 식문화에 좀 더 진지하게 편입시키고 싶다면 아예 짠맛이 두드러지는 쌈장 비슷한 걸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붐부 카창(Bumbu kacang), 베트남에서는 느억 쩜(Nước chấm)이라 불리는 양념장은 원래 볶은 땅콩을 절구에 빻아서 만들지만 땅콩버터를 써 품을 훨씬 덜 들이고도 만들 수 있다. 마늘, 간장, 라임 즙과 액젓으로 맛을 내니 강한 짭짤함과 발효의 맛 및 향이 고소하고 풍부한 땅콩버터의 등에 업혀 폭발적인 양념장이 된다. ‘말 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말이 있듯, 양념장만 만들면 덩그러니 심심할 테니 채소의 아삭함을 잘 살려 줘 여름에 어울리는 메뉴인 월남쌈을 해 먹는 것도 좋다. 재료는 다양하게 쓰지만 써는 수준 이상으로 손이 많이 가지는 않는 데다, 쌈에 능숙한 우리가 각자 ‘셀프’로 싸 먹을 수 있으니 효율적인 한 끼 식사로 훌륭하다. 액젓을 어차피 쓰는 김에 쌈장도 약간 더하면 또 다른 느낌의 양념장이 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게 살펴본 걸까. 마지막으로 일종의 비기(祕技) 하나를 소개한다. 입맛 없는 여름에는 훌훌 넘기기 좋은 콩국수만큼 편하고 맛있는 음식(기성품 말이다. 집에서 직접 만들기를 시도한다면 곧 불행해지니 주의한다)이 없다. 파는 콩국물이 편하고 품질도 나쁘지 않지만 맛이 다소 불만스럽다. 대체로 국물 자체가 그렇게 고소하지 않은 데 그마저도 소금간을 거의 하지 않아 밍밍하다. 그래서 땅콩부터 아몬드, 브라질넛 등의 견과류를 조금씩 더하는 게 추세인데, 이들 견과류보다 땅콩버터 한 숟갈이 더 효율적이다. 아무래도 점도 탓에 숟가락으로 섞으려면 품이 조금 드니 손 블렌더 등으로 섞어주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 

땅콩버터가 많이 남았다면 밀가루, 설탕, 계란 등과 섞어 구우면 땅콩 쿠키가 완성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땅콩버터가 처치 곤란하다면 쿠키로 

싸다고 양판점 같은 곳에서 1㎏이 넘는 대용량 땅콩버터를 사 왔다가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더니 급기야는 꿈에서도 땅콩버터를 울면서 퍼먹는 것이다. 맛과 짧지 않은 유효기간을 생각하면 벌어질 가능성이 낮지만, 만약을 대비해 땅콩버터로 구울 수 있는 쿠키 레시피 한 가지쯤 알아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재료 

밀가루 210g

베이킹소다 1작은술

소금 ½작은술

흑설탕 300g

계란(대란) 2개

무염버터 60g, 전자레인지에 녹여 식힌다

꿀 2큰술

바닐라 1작은술

무염 볶은 땅콩 80g, 굵게 다진다(선택).

 ▦만드는 법 

① 오븐을 섭씨 180도로 예열한다. 제과제빵 팬의 바닥에 유산지를 깔아 준비하고 밀가루, 베이킹소다, 소금을 한데 잘 섞는다.

② 큰 대접에 설탕, 땅콩버터, 계란 녹인 버터와 바닐라를 더해 고르고 매끈해질 때까지 섞는다. 

③ ②에 1의 밀가루를 더해 부드러운 반죽을 이룰 때까지 섞는다.

④ ③의 반죽을 2큰술 분량으로 떼어내 둥글게 뭉쳐 1의 팬에 올린 뒤 손가락으로 눌러 지름 5㎝가 되도록 누른다. 팬의 크기에 맞춰 반죽을 올리는데, 반죽 한 개 크기만큼의 간격을 두어야 구워 부풀어 오르면서 뭉치지 않는다.

⑤ ④의 팬을 오븐에 넣어, 반죽의 가장자리가 노릇해질 때까지 10~12분 구운 뒤 꺼내 그대로 5분 두었다가 식힘 망으로 옮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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