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골프채 구하기 어렵고 연습장도 우타 골퍼들에만 편의 
 국내 수천명 프로선수 중 좌타 단 한명… 미국∙일본과 대비 

좌타 골퍼 이승찬이 10일 경기 하남시 한 골프연습장의 맨 끝타석에서 스윙을 하고 있다. 이승찬은 국내 최초의 좌타 국가대표와 더불어 최초의 좌타 남자 프로선수를 목표로 삼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8월 매경ㆍ솔라고배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 우승자 이승찬(19ㆍ한국체육대)은 국내무대서 극히 드문 ‘좌타 골퍼’다. 미국의 대표적인 좌타 골퍼 필 미켈슨(49)와 버바 왓슨(41),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을 브라이언 하먼(32)등 해외 무대선 좌타 골퍼가 종종 눈에 띄지만, 국내 프로골퍼로 등록된 수천 명 가운데 좌타 골퍼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회원인 정이연(28) 단 한 명뿐, 성인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서도 이승찬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에 좌타 골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스포츠 계에 짙게 배어있는 왼손잡이 차별 탓이다. 지하철 개찰구, 가위, 컴퓨터용 마우스, 화장실 휴지걸이 등 ‘일상 속 왼손잡이 차별’이 스포츠계에도 굳게 자리한 셈이다. 왼손잡이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 국내에선 약 5%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스포츠종목에선 왼손 선수가 1%이하인 경우가 여전히 많다. 사격, 양궁 등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일부 종목이 대표적인데, 재작년 기준 약 636만 명(대한골프협회ㆍ경희대 골프산업연구소 공동 조사)의 활동인구를 둔 골프 종목조차 왼손잡이가 성장하기엔 매우 척박한 환경이다.

이승찬은 아버지의 권유로 좌타 골프채를 잡은 뒤 ‘골프장의 소수자’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골프를 시작했다는 그는 “언뜻 보면 왼손잡이가 좌타 골프채를 휘두르는 게 당연한데, 한국은 좌타 골퍼로 성장하기 유독 힘든 여건”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 하남시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이승찬은 골프에 입문한 이후 줄곧 그래왔듯 34개 타석 가운데 맨 끝자리에서 벽을 마주한 채 연신 샷을 날렸다. 그는 “골프연습장엔 좌타석이 아예 없거나 맨 구석에 하나쯤 설치돼 있다. 장비 매장에도 골프채는 물론 장갑까지 왼손잡이용품이 판매되지 않아 주문을 해야 한다. 레슨을 받을 때도 오른손잡이에 맞춘 교육을 받아 스스로 왼손에 적용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에선 웬만한 대형 매장에 좌타 선수용 장비가 구비돼 있는 등 왼손잡이 골퍼에 대한 배려가 꽤나 퍼져있다.

좌타 골퍼 이승찬이 10일 경기 하남시 한 골프연습장의 맨 끝타석에서 스윙을 하고 있다. 오른손잡이 골퍼들은 그의 연습장면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곤 한다. 서재훈 기자

이런 교육환경 탓에 골프를 배우려는 왼손잡이들 손에 오른손 용 장비가 쥐어지기 일쑤다. 24일 한국프로골프(KPGA)에 따르면 KPGA 회원 6,470명(정회원 1,895명ㆍ준회원 4,575명)을 통틀어 왼손 골퍼는 단 한 명도 없다. KLPGA까지 확대해도 2,535명의 회원 가운데 왼손 선수는 비활동 골퍼인 정이연 뿐이다. 이승찬이 KPGA에 입문한다면 국내 1호 왼손 남자 프로골퍼가 되는데, 영광보다 씁쓸함이 앞서는 타이틀이다.

아버지로부터 왼손잡이 골프채를 물려 받아 골프를 시작했다는 이승찬은 고교 2학년 때인 2년 전 해외에서 들여온 골프채를 아직까지 사용 중이다. 그는 “왼손 골프채를 구하기 힘든 데다, 유명 골프용품 업체의 국내본사에 찾아가 시타를 하려 해도 대체로 왼손 장비가 구비돼 있지 않거나 시타석이 오른손잡이에게만 맞춰져 있다”고 했다. 그는 “오른손잡이 선수들처럼 동료들과 채를 바꿔가며 다양한 모델을 체험해 볼 수도 없고, 업체에 새 제품을 주문하더라도 한 달 가량이 흐른 뒤에야 골프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선수로서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연습 환경이다. 골프연습장은 대체로 국내 골퍼 가운데 99%이상인 우타 골퍼들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연습장 관계자들은 우타 골퍼들이 좌타 골퍼와 마주보길 민망해 한다거나, 좌타 골퍼가 잘못 친 공에 맞을까 무서워해 좌타석을 아예 두지 않든지 맨 왼쪽 구석에 한 자리 정도만 마련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좌타 선수들은 샷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연습장을 찾아가더라도 언제나 구석에서 벽을 보고 친다. 이승찬은 “공이 왼쪽으로 휘면 곧장 그물망에 걸려 거리를 확인하지 못한다”며 “연습장마다 중간 쪽에 딱 한자리 정도만 좌타석이 마련된다면 좋을 텐데, 국내에선 아직까지 그런 곳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국내 유일의 좌타 프로골퍼 정이연. 정이연 제공

국내 유일의 좌타 프로골퍼 정이연이 느껴 온 막막함도 마찬가지다. 14세 때 골프를 처음 배웠다는 정이연은 처음엔 다른 골퍼들처럼 오른손으로 골프를 배워오다가 좀처럼 스윙에 힘이 붙지 않아 17세 때 좌타 골퍼로 전향해 프로 입성 꿈을 이뤘다. 현재는 투어를 중단하고 체육교육대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여성용’ 왼손 골프채를 구하는 것부터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며 “(장비를)주문한 뒤 한 달 이상 소요되는 배송시간은 감수할 수 있지만, 프로 생활을 하며 내게 잘 맞는 골프채를 구하는 데 따르는 제약이 너무 많았고 경쟁력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아쉬워했다.

선수들이 느낀 불편이 이렇다 보니 일반 왼손잡이 골퍼들이 겪는 불편은 더 크다. 이들은 대체로 업무 등 일상에선 왼손을 쓰다가도 골프만 오른손잡이로 변신하는 ‘왼손잡이 우타 골퍼’가 된다. 프로야구 레전드인 이승엽(43)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이사장 정도가 골프선수가 아닌 이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좌타 골퍼라지만, 그 역시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 골프에 입문했기에 좌타 골프 장비를 어렵지 않게 갖출 수 있었고 연습도 수월했다고 한다.

왼손잡이 우타 골퍼인 정의철 KPGA 홍보팀장은 “다른 왼손잡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비나 연습환경 제약으로 우타 골퍼가 됐지만, 실력이 더디 느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른손잡이가 왼손 채를 휘두른다고 생각하면 불편함을 이해하기 쉽다”며 “왼손잡이 골프강사도 없을뿐더러, 흔하디 흔한 레슨 동영상마저도 왼손잡이를 위한 영상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스크린 골프장을 가더라도, 좌ㆍ우타 겸용 타석이 있는지 문의를 해 보고 가야 하고, 골프장에서도 티잉 그라운드가 오른쪽을 향해 배치된 경우가 많아 왼손잡이는 ‘아웃 오브 바운드(OBㆍOut of bound)’ 풍년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기 포천시 한 골프클럽 캐디는 “일반인 골퍼의 경우 좌타는 한 달에 한 두 명 정도 보면 많이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12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2회 휴온스 엘라비에 셀러브리티 프로암 최종라운드에서 5번홀 세컨샷을 하고 있다. KPGA 제공

‘골프계 소수자’ 왼손잡이들의 속앓이가 해소될 길은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왼손잡이들로선 좌타 전용 장비 판매소, 연습장, 좌타 강사가 확충되지 않는 이상 왼손잡이 우타 골퍼가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고, 골프용품 업체나 연습장 주인들은 좌타 골퍼가 늘어나야 수지타산이 맞는단 입장이다.

어렵게 좌타를 지켜온 골프선수들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정이연은 “앞으로 KLPGA 투어에 재도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지만, 석사 과정을 마친 뒤엔 일단 체육교사나 왼손잡이 골프 강사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아마추어 신분인 이승찬은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미국프로골프(PGA) 무대 진출”이라며 “한국 선수 가운데 유일한 남자 프로선수가 돼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자연히 왼손잡이 골퍼에 대한 저변도 차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나중엔 왼손잡이 골퍼를 포함한 스포츠계 소수자들을 지원하는 재단도 설립하고 싶다”는 소망도 곁들였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찬이 10일 경기 하남시 한 골프연습장에서 좌타 스윙을 선보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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