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25일(현지시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하면서 국내 게임업계는 향후 닥쳐올 ‘규제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WHO의 새로운 국제질병분류(IDC) 체계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IDC가 국내 적용되는 2022년 이후 각종 규제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2011년 도입돼 큰 반발을 샀던 ‘셧다운제’와 같은 시간 규제다. 중독 방지를 위해 ‘하루 5시간 이상 플레이 금지’ ‘일주일 5일 이상 접속 금지’ 등의 강제 규정이 추가되거나 셧다운제가 확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이 0시부터 오전 6시 사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로, 2014년 논란 속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시간 규제가 도입되면 게임 업계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9.6% 감소했다. 2011년 말 시행된 셧다운제 영향으로 이전까지 계속 성장하던 게임 시장이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셧다운제 시행 이전과 이후 각각 2년을 비교한 결과 게임업계 평균 매출이 2.2% 감소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경우 이용자들이 자주, 오래 접속해 캐릭터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나 횟수 규제가 생긴다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시간 규제를 만들더라도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한 국내 게임산업만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게임 중독세’에 대해서도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일 “게임중독세를 추진하거나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2013년 손인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손인춘법’은 중독성이 높은 인터넷 게임의 경우 최대 매출의 5% 또는 5억원 이하까지 과징금을 부과하고, 정부가 인터넷 게임 관련 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 1% 이하 범위의 ‘인터넷게임중독치유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지만, 업계에서는 비슷한 법안이 재발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업체 매출을 기준으로 게임중독세가 신설될 경우 스타트업 생태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게임 스타트업은 대부분 적자 상태인데, 매출에 따라 세금까지 내라고 하면 가혹한 처사”라며 “게임 스타트업의 창업 의지만 꺾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바일 시장조사기관 앱애니에 따르면 게임 분야는 2016년 국내 구글플레이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뛰어드는 분야이다.
중국 시장이 뚫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고전하고 있는 게임업계는 WHO 결정의 국내 적용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WHO의 질병코드 도입 결정은 가이드라인 성격의 권고사항일뿐, 실제 적용 여부는 각 국가의 고유 권한”이라며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 낙인효과와 산업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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