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뒤 방치돼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 유족이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토대로 병원장으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권씨 사망으로 부각됐던 ‘수술실 CCTV 설치법’, 일명 ‘권대희법’ 통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심재남)은 28일 권씨 유족이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병원 A 원장 등 3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억 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량출혈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해 권씨의 출혈량 등 경과 관찰은 물론, 지혈 및 수혈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턱뼈를 잘라내는 수술은 대량출혈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하나 이행하지 않은 과실도 있다”고 판단했다. A 원장 등의 배상책임 범위를 80%로 정했다.
25세 취업 준비생이던 권씨는 2016년 A 원장 병원에서 사각턱 절개 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뇌사 상태에 빠진 권씨는 49일 뒤 결국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수술실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A 원장이 여러 명을 동시에 수술하다 수술실을 나갔고 지혈이 제대로 안된 권씨는 간호조무사에게 맡겨져 방치됐다”고 주장했다.
A 원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의료행위에서 예상 외 결과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거나 “개인성형외과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고 주장했다. 판결 선고 직전에는 “뼈를 깎아내는 고난도의 안면윤곽 수술은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권씨가 알고도 개인적 만족감을 얻을 목적으로 수술에 동의했다”는 논리로 “배상책임을 70% 이하로 제한해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유족들은 “사고 후에도 ‘14년 무사고 자부심’ ‘검증된 안전성’ ‘CCTV 공개’ 등의 문구를 써가며 광고하던 병원이 억울하게 죽은 아들을 탓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판결 선고 직후 권씨 어머니는 “CCTV 영상을 보면 저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으로 보일 정도인데 100% 책임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수술실 CCTV 설치법’이 탄력 받을 지 주목된다. 권씨 사망 이후 A 원장 등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형사와 민사 소송이 함께 제기되면 형사 재판이 먼저 진행되고, 민사 재판은 그에 따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기소도 되지 않았는데 민사 재판이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순전히 CCTV의 힘이다. 실제 권씨 어머니는 병원 측 의료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술실 CCTV 영상을 500번 이상 돌려보며 3년 동안 1인 시위와 법정 투쟁을 이어왔고, 80% 수준의 높은 배상 책임까지 인정받았다.
다만, 수술실 CCTV에 대해 “의료인과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있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치료를 부추긴다”는 반대론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 14일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에 대해선 영상 촬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이런 논란을 의식한 의원들 일부가 철회해 법안이 폐기되기도 했다. 지난 21일 다시 15명의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권씨 어머니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고 있는 중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