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주민들 주거권 교육
“비가 새도 집주인을 원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화장실 바닥 타일이 깨져 (발을) 다칠까 조마조마했는데, 괜히 고쳐달라 했다가 이웃마저 피해를 볼 수 있어 참았죠. 하지만 오늘을 계기로 이젠 집주인에게 당당히 요구할 겁니다. 아이 캔 두 잇(I can do itㆍ나는 할 수 있다)!”
29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희망나눔센터 1층 로비에서 인근 쪽방 주민 김동신(56)씨가 힘줘 말하자 “맞다, 맞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쪽방은 왜 서울 시내 번듯한 아파트의 평당 평균 월세보다 비싸야 하는지, 이렇게 열악한 보금자리마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진 않을지 궁금해하고 걱정하던 쪽방 주민 40여명이 모여 ‘주거권(주거기본법상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이들은 행사를 주최한 반빈곤 운동단체 ‘홈리스 주거팀’이 나눠준 한국일보 보도(5월 7, 8, 9일) ‘지옥고 아래 쪽방’ 기사 인쇄물을 한 장씩 손에 쥐고 연신 눈빛을 반짝였다. 주거권이라는 낯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모인 쪽방 주민들은 교육이 이뤄진 2시간 동안 메모를 틈틈이 하며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강연에 앞서 “이들이 수업에 익숙하지 않으니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걱정했던 관계자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였다.
노숙인 보호시설에 머물다 1년여 전부터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 자리 잡았다는 안현수(61)씨는 “샤워실도 없는 곳에 어떻게 사느냐고 했더니, 관리인이 ‘싫으면 가라’고 말했다”라며 “시청이나 구청이 쪽방촌에 공동 생활 시설을 지어주니 오히려 건물주들이 시설 보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세를 놓더라”고 토로했다.
‘서울시 318채 쪽방 건물 실소유주 다수가 실제로는 부유층이며, 다른 곳에 살며 월세만 받는다’는 한국일보 보도 내용이 소개되자 주민들은 “쪽방 사람들은 경험으로 다 아는 이야기”라면서도 실소유주의 면면을 살피고는 “돈이 되니 알을 박지”라며 혀를 찼다. 쪽방 주민들은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에는 앞다퉈 손을 들며 쪽방 생활의 곤궁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건물주가 방문을 달아주지 않아 한겨울을 방풍 비닐에 기대 지냈다는 사연,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얼어붙은 계단을 겨우내 내려오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이야기 등 매달 월세 22만8,188원(서울시 조사 기준 쪽방 평균 임대료)을 낸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열악한 쪽방의 사정을 쏟아냈다. 윤용주(57)씨는 “대부분 50~70대인 쪽방 주민들은 각자의 사연과 지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데, 가진 것 없고 초라한 이들을 착취하는 건물주의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서울시가 나서 한국일보 기사에서 소개된 종로구의 ‘공공쪽방’ 제안 같은 속 시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당한 권리에 대해 공부하고 약탈적 임대 행위에 저항할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이들은 또다시 거리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서울역 쪽방상담소가 지난 4월 한 쪽방 건물 주민들에게 내달 2일까지 퇴거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터다. 해당 건물은 서울시가 쪽방 건물을 건물주로부터 전대해 리모델링을 거쳐 주민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온 ‘저렴쪽방’이다. 쪽방상담소와 동자동 사랑방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난해 겨울 수도관이 파열되는 등 노후화가 심해 쪽방상담소가 건물주에 수리를 요청했으나 건물주가 공사를 해줄 수 없으니 퇴거하라는 답변을 해온 상태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2015년 동자동 9-20 건물에서 43가구가 쫓겨난 데 이어 서울시가 재임대하는 건물에서조차 세입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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