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에도 고객이 원하면 강행… 대부분 안전조치 없이 탑승
불과 열흘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다뉴브 야간 유람선을 탑승한 이윤미(50ㆍ가명)씨는 30일 오전 한국 관광객 30명이 탑승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전날 침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배 크기나 탑승객 규모를 봤을 때 우리 일행이 탔던 배와 유사해 보인다”면서 “밤중이었고 아무도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아서 사고가 났으면 화를 입을 뻔했다”고 말했다. 동창생 3명과 가이드 없이 자유여행을 했다는 이씨는 “헝가리 말로 나온 안내방송은 아예 알아듣지 못했고, 탑승객들 대부분 구명조끼 없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 식이라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덧붙였다.
사고를 당한 탑승객들과 같은 여행사 참좋은여행을 통해 지난해 5월 동유럽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임지숙(60ㆍ가명)씨도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다뉴브강 유람선을 탄 것으로 기억했다. 임씨는 “여행사 인솔자들로부터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안내를 못 들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요새 워낙 동유럽이 뜨는 데다, 참좋은여행은 상품비가 다소 저렴한 편이라 주변에서도 많이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 30명을 태운 노후 유람선이 침몰해 최소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여행업체와 관광객들의 안전불감증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고에서 여행사 측이 소형 노후 선박에 관광객들을 태운데다, 선박회사 대부분 구명조끼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은 헝가리를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필수 여행상품 중 하나다. 참좋은여행도 일부 동유럽 패키지 상품에 필수 상품으로 포함시키고 있고, “노란색 조명을 받아 빛나는 국회의사당과 세체니 다리는 유람선 여행의 압권”이라고 홈페이지에 홍보하고 있다. 이상무 참좋은여행 전무는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난 패키지 상품에도 다뉴브강 유람선 상품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내린 폭우, 70년이나 된 선령 등 여행사 측에서 여행객들의 안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허블레아니호는 1949년 소련에서 건조됐고, 1980년대 헝가리에서 새 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기사 출신인 고영일 해사 전문 변호사는 “선박 사고가 났을 때 따져야 할 부분이 배가 운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감항력’”이라면서 “여행사가 감항력이 떨어지는 노후 선박에 관광객들을 태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지 취재 결과 사고 당시 현지에 비가 계속 기상 상황이 온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좋은여행 측도 동유럽 패키지 상품 설명에 “3월 말과 5월 말에 다뉴브 강물이 범람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대로 된 안전조치 없이 유람선을 타는 게 유럽여행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직장인 최정우(29)씨는 “지난해 9월 부다페스트에서도 유람선 안에 구명조끼가 없었고,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배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2016년 부다페스트를 찾았다는 류지수(28)씨도 “유람선 숫자, 종류도 워낙 다양하고 해질녘에 탑승이 몰리다 보니 배와 배 간격이 매우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면서 “별도의 안전조치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관광객뿐 아니라 여행사도 안전조치에 민감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참좋은여행과 유사한 동유럽 패키지 상품을 운용한다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날씨가 좋지 않더라도 필수 코스는 고객들이 원하면 감행할 수밖에 없는데다, 구명조끼 착용도 일일이 강제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참좋은여행 측은 사고 당시 탑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했는지, 구명보트가 있었는지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필 참좋은여행 광고홍보부장은 “기본적으로 현지 가이드가 구명조끼를 착용하라고 공지하고 있다”면서도 “현장에 구명조끼가 없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