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작품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
올해로 감독 데뷔 20년째… 20년 더 현역으로 버틸 것
“싱숭생숭합니다. 왠지 불안하기도 하고. 오만 가지 생각이 들어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고도 떨지 않았던 봉준호(50) 감독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가볍게 숨을 골랐다. 영화 ‘기생충’이 드디어 관객을 만나는 날, 몸은 인터뷰 테이블 앞에 있지만 마음은 극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3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봉 감독은 “심란해서 휴대폰도 멀리하고 있다”며 “칸영화제보다 관객과의 만남이 더 긴장된다”고 말했다. 전작 ‘옥자’(2017)는 제작사 넷플릭스가 온라인ㆍ극장 동시 공개 전략 때문에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과 갈등을 빚으면서 개인 극장에서만 제한적으로 개봉했다. 온전한 극장 개봉은 ‘설국열차’(2013) 이후 6년 만인 셈이니 떨릴 만하다.
극장은 기대감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 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지난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영화제는 심사위원 9명 만장일치로 ‘기생충’에 최고 영예를 안겼다. “혹시 행정 착오는 아닐까, 주최 측이 바로잡기 전에 출국해 버려야지, 잠시 상상해 보기도 했어요. 몇 년 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문라이트’가 ‘라라랜드’로 잘못 발표되는 해프닝도 있었잖아요.” 그야말로 ‘쓸데없는’ 상상을, 눈송이처럼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가 깨끗이 덮었다. 공식 상영에도 참석해 봉 감독을 응원한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은 미국 뉴욕에서 영상 통화를 걸어 와 괴성에 가까운 환호를 질렀다고 한다.
심사위원들도 축하 리셉션에서 봉 감독을 둘러싸고 온갖 궁금증을 쏟아냈다. “영화인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질문 주제가 색 보정, 특수효과, 컴퓨터그래픽(CG) 같은 것들이에요.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의 주요 배경인 저택과 반지하가 모두 세트라고 하니 놀라더라고요. 엘 패닝은 배우들 연기에 찬사를 많이 했어요. 한국어는 몰라도 감정과 템포가 느껴져서 너무나 좋았다고 하더군요. 이냐리투 감독은 송강호 선배가 최우수남자배우상 유력 후보였는데, 영화가 황금종려상으로 결정되는 바람에 상을 줄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어요.”
영광스러운 순간을 되감아 보던 봉 감독이 문득 더 먼 과거에서 잊지 못할 장면 하나를 가져왔다. 봉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상영 중이던 2000년 2, 3월 어느 날이다. “흥행이 안 돼서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갈 즈음이었어요. (출연배우) 변희봉 선생님과 낮에 소주를 한잔 걸치고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봤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보는구먼’이라며 선생님이 저를 위로하시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기생충’을 두고 해외 언론은 “봉준호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극찬했다. 쓰라린 실패 같았던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해외 프로젝트인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르기까지 봉 감독이 구축해 온 영화 세계가 ‘기생충’에 집약돼 있다. “봉준호가 더욱 뛰어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봉 감독의 시선은 양극화된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계 질서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를 향해 있다. 구성원 모두가 백수인 가난한 기택(송강호)네 가족과 부유한 IT기업가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계급 충돌이 코미디,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로 쉴 새 없이 변주되며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놀랍도록 재미있고 황홀하다. 저택과 반지하의 대비, 저택의 다층 구조, 공간을 잇는 계단의 수직 이미지 등 빼어난 미장센도 주제의식을 대변한다.
봉 감독은 “그때그때 가슴에 꽂히는 이야기를 따라왔다”며 “과거로 돌아갔다기보다 늘 하던 일을 계속해 온 느낌”이라고 했다. 다만 ‘마더’ 때와 비슷한 제작 규모라서 “몸에 맞는 듯한” 아늑함과 편안함 속에 촬영했다. 그는 “‘설국열차’와 ‘옥자’가 천체망원경으로 찍었다면 ‘기생충’은 현미경으로 미세하게 촬영한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차이는 엔딩이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벽을 부수어 새로운 문을 열었고, ‘옥자’는 모든 생명을 구할 순 없었지만 주인공 소녀에게 친구는 되찾아줬다. 하지만 ‘기생충’은 ‘기생’으로 상징되는 생존 투쟁의 끝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지 못한다. “우리 주변 현실 이야기잖아요. 섣불리 희망을 말하는 게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어요. 슬픔에 직면하더라도 솔직하게 끝내고 싶었습니다.”
‘기생충’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아름다웠다. 표준근로계약을 지켰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봉 감독은 “우리는 이미 수년 전 정착된 표준근로를 따랐을 뿐 선구적으로 공헌한 게 하나도 없다”며 “나와 ‘기생충’이 표준근로의 아이콘이 돼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봉 감독의 주파수는 이미 여덟 번째 장편 영화에 맞춰져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구상 중이고, 미국 스튜디오와도 영화 제작을 논의하고 있다.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칸영화제는 이제 과거가 됐어요. 빨리 잊혀야 해요. 언덕길에서 굴러 떨어질 수는 없잖아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죠. 1999년에 ‘플란다스의 개’를 촬영했으니 감독이 된 지 딱 20년이 됐네요. 앞으로 20년 더 현역으로 버티고 싶어요. 영화인은 현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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