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7> 20대의 정치학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만 들어가도 20대의 정치관련 의사 표현이 넘칩니다. “청년들이 반공교육으로 보수화됐다”는데, 반공과 보수를 연결 짓는 낡은 사고는 사실 20대에게 유효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눈치껏 기존 체계에 순응해야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사회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출해야 한다는 모순. 청년을 주체가 아닌 대상에 가둔 프레임이 20대의 정치관을 함부로 왜곡했던 것은 아닐까요. 청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하기 전에, 청년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들을 때입니다. 정치적인 20대의 정치적인 이야기, SNS를 넘어 신문을 통해 전체 공개합니다.
◇내 삶 속 정치의 모습은
카페인(메신저 대화명)= 난 스타 정치인들을 접하면서 정치에 관심 갖기 시작했어.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에 진보 정치 팟캐스트 ‘나꼼수’ 열풍이 불었어. 방송에서 비속어를 섞어가며 상대 진영을 비판하는 게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지만, 당시 정부가 잘못한 일들을 눈치 보지 않고 지적하는 모습에서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아. 팟캐스트를 계기로 책도 사보고, 정치인 강연도 찾아갔지. 그 경험들이 쌓여 내 정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 정치관이 정립되는 시기에는 주위 환경이 특히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
표정부자= 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경험하면서 정치와 가까워진 것 같아. 그전까지 정치는 막연하고 어려운 어른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어. 탄핵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됐고,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것을 저해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 19대 대선 당시 청소년 모의 대선 투표가 있었을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대. 하지만 정치 과목 선생님께 정치에 대해 질문을 드려도 대답을 안 해준다는 거야. 정치적인 일이라서 조심스럽거니와 부모님의 항의 전화가 걱정돼서. 정치 과목 수업도 현실 정치보다는 수능 대비용 암기에 그친다는 평가였어. 정치가 내 피부에 와 닿는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현실 정치와 정치 참여에 대한 교육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소보루빵= 난 국회, 청와대에서 하는 것만이 정치는 아니라고 생각해. 일상 속에서 내 생각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것이 모두 정치야. 난 최근 개봉한 영화 ‘걸캅스’에 대한 정치적 행동을 했어. 이 영화는 국내 상업영화론 최초로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웠어. 난 페미니스트라서 SNS에 후기를 올리고 ‘영혼 보내기’도 했어. 영혼 보내기가 뭐냐 하면,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내가 직접 보러 갈 시간은 없으니까 표만 사는 거야. 몸은 못 가도 내 영혼을 보내는 거지. 나에게 중요한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게 정치적 행동 아닐까. 정치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는 것만이 정치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어. “마, 이게 정치다!”
강냉이= 현재 586세대(50대로 80년대 학번의 60년대 출생자)는 이런 후원 같은 걸 정치적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 거리에 나가 그들이 했듯이 화염병을 던지는 것만이 정치는 아니야. 그때는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않은 독재체제였고, 정치환경이 불안정했어. 화염병은 그들의 강력한 의사표현 수단이었지. 지금은 대의민주주의가 굴러가고,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잖아. 우리는 좀 더 일상적인 일에 목소리를 내는 거지. 그 전 세대나 우리 세대나 일상에서 정치활동을 잘하고 있어.
올빼미족= 지금은 옛날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됐어. 집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의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지. 당장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떤 글이 올라왔는지, 몇 명이나 그 글에 동의했는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잖아. 또 SNS나 인터넷을 사용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 정치 뉴스를 공유하거나 관련 단체를 후원하는 식으로 말이야.
◇’정치적 올바름’이 결여된 정치권
강냉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는 사람들의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는 거야. 그런데 여러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꼭 목소리가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겨. 대부분 약자나 소수자지. 그 사람들의 의견을 물리치지 말고 존중하자는 흐름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란 가치가 대두된 것 같아. 언어 사용에 있어 편견이나 차별의 요소를 배제하자는 거지. 혐오 표현이 만연한 사회에선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걸 막을 수 없을 거야. 사회의 실제적 변화를 끌어내려면 정치 안에서 이 가치를 꼭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소보루빵= 지금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야. 정치적 올바름은 올바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무엇이 맞다 혹은 그르다는 말은 아니야. 정치적 올바름의 본질은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것 같아. 그 대척점에 혐오가 있어.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성 소수자 혐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적 혐오를 거부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존중하자는 것이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나라(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라 하는 것”이라고 한 발언은 너무 충격적이었어. 자신이 인종주의자고 성차별주의자라고 인정하면서 차별이 필요하다고 말한 거야.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한 쪽을 배척함으로써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무서운 발언이지.
올빼미족= 정치적 올바름은 모두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거야. 모든 상황에서 내가 권력을 가진 다수자일 수는 없어. 자신이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집단 폭행에 비유해. 정치적 올바름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은 그보다 나은 방법으로 표현하면 돼. 표현방식이 문제라는 이유로 관련된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건 잘못된 방향이라고 봐. 소수자를 배제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두의 목소리를 듣자는 거잖아.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에 무지한 정치인의 발언들이 속출해. 최근 한 정치인이 퀴어 퍼레이드 참여자를 모집하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더불어퀴어당이라고 말했더라.
카페인= 최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의 막말이 줄을 잇고 있어.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5ㆍ18 유공자에 대한 망언부터 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하는 비하 발언까지, 막말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됐어.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정치인이야말로 정치적 올바름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지지층을 모으고 싶다면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할 게 아니라 정책으로 승부해야지. 특히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한국 정치사에 오래도록 비난받을 모습이야.
◇진보? 보수? 둘 다 아닌데
소보루빵=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하위에 현실 정치가 있는 것 같아. 정치권에도 정치적 올바름이 보장돼서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의 국회는 다양함을 반영할 수 없는 구조야. 거대 양당은 보수와 진보 논리로만 말해. 하지만 20대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지 않아. 현실정치랑 멀어져 가는 이유야. 보수는 신자유주의, 진보는 공산주의라는 생각은 낡았어. 독재체제와 민주화 운동을 우리는 역사책에서만 봤어.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윗세대 얘기고 그들만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어.
올빼미족= 기존의 진보-보수 프레임은 현실과 괴리감이 있어. 사실 무슨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지도 잘 모르겠어. 단순히 현상 유지를 바라면 보수고, 변화를 원하면 진보라고 하기엔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사람들도 특정 사안에 따라 때론 진보적이기도, 때론 보수적이기도 할 거야.
강냉이= 누군가 자기를 진보나 보수라고 규정한다면 이를 싫어해야 한다고 생각해. 실제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 “너는 진보라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야. 군복무 중 북한과 교전 경험이 있는 젊은 남성은 안보 이슈에 굉장히 보수적일 수 있어. 그러나 다른 문제를 놓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사회 분배를 지향하는 진보일 수 있지. 기존 정치권에서는 이런 복합적인 현실을 파악하려 하지 않아.
소보루빵= 정치인이 하는 정치가 나의 일상과 연결되지 않는 거야. 우리 세대에 진보와 보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 차이야. 지금 진보 정당이라고 하는 정당들, 나는 진보라고 생각 안 해. 우리나라에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 인권에 발 벗고 나서는 정당은 없잖아. 지금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은 보수 정당으로 이름 붙어야 맞아. 극우정당은 밀어내고, 정당의 정체성이 한 칸씩 옆으로 옮겨져야 돼.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보수 정당에 있지만 진보적인 얘기도 한다는 평가를 받더라. 이념에 따른 맹목적 주장보다 사안에 맞는 판단을 한다는 얘기야.
◇더 나은 정당정치를 할 권리
올빼미족= 최근 등장한 정당 해산 국민청원에서 거대 양당이 그 청원의 대상이 됐잖아. 그러나 한 정당의 해산에 동의했다고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야. 문제는 막상 진짜 투표를 할 땐 한쪽에 반대한다면 상대 쪽을 선택해야 된다는 거지. 소선거구제에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니 투표를 통해 본인의 의사를 밝히라고 하지만, 양당 중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환멸을 느끼게 돼. 옛날에는 이런 걸 정치 혐오라고 말하며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비난했어. 그렇지만 이제 대통령 탄핵과 이에 따른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심도는 더 높아졌잖아.
강냉이= “한국 민주주의는 선거 날만 딱 실행된다”는 말이 있잖아. 잘못된 프레임이야. 투표를 장려하려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이 아니죠”라며 국가가 프레임을 부추겨. 나는 차악을 선택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투표할 바에야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도 정당한 권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정당정치의 한계를 체감하면서 국회 정치보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정치로 눈을 돌리게 된 것 같아. 국민청원 참여나 SNS활동, 시민단체 후원 같은 것 말이야.
소보루빵= 일상 속의 후원도 정치가 맞는데,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결국 정치권에 기대게 되는 게 사실이야. 사회의 큰 변화를 끌어내려면 결국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제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잖아. 그게 대의민주주의의 순기능이겠지. 문제는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냐는 거야. 내 뜻을 귀담아듣고 정치에 반영해 줄 것 같은 정당과 정치인이 나와도, 마음으로는 응원하지만 투표는 해주지 못해. 소수정당 지지자인 나는 지난 총선 때 그랬어. 지금의 선거판은 거대 양당의 싸움이잖아. 내 표가 사표가 될까 봐 결국 지역구는 대표 정당, 비례대표는 소수 정당을 찍게 되더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선거연령 하향 등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정치권에 반영시킬 제도적 변화가 필요해.
표정부자= 난 기존 정치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어.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이 있긴 할까. 막연한 의문이 들어. 국회가, 국회의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국회가 열리지 않고 중요한 논의가 어제도 오늘도 멈춰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답답해. 그들 마음대로 국회를 닫는 게 이해가 안 돼. 직무유기 아니야? 의견이 대립해도 국회를 열고 토의를 해야지. 국회 문을 닫으라고 누가 허락했어? 일하지 않는 그들에게 세금으로 월급을 줘야 하냐는 푸념이 이해될 정도야.
카페인= 20대 국회의 평균 연령이 55.5세래. ‘올드 보이’라고 하는데, ‘보이’가 아니라 ‘아저씨’들이 국회를 점령한 셈이지. 난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2030 국회의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2030 인구가 전체 유권자의 35.7%를 차지하는데, 현재 2030 국회의원은 고작 3명(전체 국회의원의 1%)뿐이야. 우리 고민을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시킬 대표들이 없으니 투표를 해도 일상에 변화가 없는 거지. 우리 세대의 정치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2030세대가 제도권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돼. 독일 정치인의 대다수는 대학교 때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한대. 대학교 내 정당 청년위원회에 들어가서 일찍부터 제도권 정치를 배우는 거지. 20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인지하는 사람이 20대를 위한 정책도 펼칠 수 있어. 우리도 대학생 때, 혹은 더 이전부터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야 해.
소보루빵=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면서 약자를 배제하지 말라고 하지만, 실상 현실정치에서는 우리 또한 배제되고 있다는 거지.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으면 될 텐데, 정치인들은 자꾸 자신이 20대를 대변하지 못함을 증명하잖아. 20대 남성은 반공교육으로 보수화됐고, 20대 여성은 집단 이기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어. 이게 20대를 이해하려 한 노력의 결과라면, 무지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했으면 좋겠어. 나이를 포함한 다양한 정체성을 도저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한계. 그리고 그들이 대변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그 삶의 전문가로서 초빙해야 돼.
올빼미족= 국회를 보면서 느끼는 건, 정치는 세상 모든 것과 연결돼있다는 거야. 모든 이슈가 국회에서 논의되잖아.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정치의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과 연결돼. 우리가 그들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국회의원의 활동이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야. 어떤 국회의원은 기자들한테 “대표 말만 듣지 말고, 내 얘기도 들어줘요”라고 호소하더라. 당대표, 원내대표, 유명 정치인 그리고 자극적인 발언에만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를 벗어나야 해. 그래야 국회에서도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성세대는 ‘나약한 세대’라 손가락질하지만 스스로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가는 세대’라 부르며 뿌듯해 하죠.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않은 앞날을 마주해 비장하면서도 유쾌한 이들. 우리가 어렴풋이 떠올리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ㆍ198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한국일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잠재력, 그들이 미처 어필하지 못한 속내를 이해하고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본보 인턴기자들의 방담(放談)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을 연재(매주 화요일)합니다.
정리=조희연 인턴기자
참여=권현지, 김한길, 정영인, 최한솔, 홍윤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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