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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사망 사고에도... 버젓이 ‘무사고 병원’ 배짱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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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사망 사고에도... 버젓이 ‘무사고 병원’ 배짱 광고

입력
2019.06.04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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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대희씨 성형수술 직후 간호조무사가 홀로 지혈조치하는 모습이 찍힌 CCTV 장면. 권씨의 피로 시트(오른쪽 원)가 검붉게 물들었고, 경고 장치(왼쪽 원)에 불이 깜박이고 있다. 유족 이나금씨 제공
고 권대희씨 성형수술 직후 간호조무사가 홀로 지혈조치하는 모습이 찍힌 CCTV 장면. 권씨의 피로 시트(오른쪽 원)가 검붉게 물들었고, 경고 장치(왼쪽 원)에 불이 깜박이고 있다. 유족 이나금씨 제공

성형수술을 받은 뒤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 사건(한국일보 5월29일 보도)과 관련해 사고 병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권씨를 수술한 병원은 여전히 성업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병원 측은 ‘14년 무사고 자부심’ 등의 허위 광고를 하며 영업을 하다 적발돼 벌금형을 받았고 지난해 또 다시 ‘무사고’ 광고를 올려 검찰 수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의료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수술실 CCTV 설치법(일명 권대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씨가 서울 강남의 A성형병원에 눈길이 간 것은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2016년. 한 눈에도 사각턱이 확연한 외모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마다 턱 부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던 권씨에게 ‘14년 무사고 자부심’이라는 병원 광고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A 병원은 홈페이지에 ‘병원 내 모든 수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원장’이라는 문구와 함께 턱수술 광고를 올렸고 갖가지 수술 후기도 공개했다. 광고를 믿은 권씨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들고 병원을 찾았고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듣지 못한 채 수술실로 들어섰다. 권씨 친구는 “A병원을 선택한 데는 광고의 힘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안전하다던 광고와 달리 권씨는 수술 도중 3,500㏄의 혈액이 빠져나올 정도로 대량 출혈을 일으켰고, 간호조무사에 의해 지혈 조치를 받는 등 장시간 방치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의료법상 거짓된 내용을 표시하거나 객관적인 사실을 과장하는 광고나 치료경험담 등 소비자로 하여금 치료 효과를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하지만 A병원의 광고는 권씨 사고 이후에도 계속 됐다. A병원의 불법 행위를 보다 못한 권씨 유족이 “아들을 죽음으로 몬 광고가 계속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복장이 터진다”면서 신고를 하고서야 제재가 가해졌다. 그나마 병원 측에 내려진 처벌은 100만원의 벌금형과 영업정지 3개월을 대신한 과징금 4,050만원 처분이 전부였다.

결국 병원이 진료를 재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던 셈이다. 이후 지난해 12월 성수기를 맞아 A 병원은 또다시 무사고 광고 등을 또 다시 홈페이지에 올렸다. 유족의 추가 신고가 다시 이어졌고, 현재 A병원 측은 이 무사고 광고를 내린 상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유족 측의 신고에 따라 A병원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이다. 병원 측은 “홈페이지 관리업체에서 실수로 올린 것을 뒤늦게 알고 광고를 내렸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박구원 기자
박구원 기자

이 병원이 간호조무사에게 불법 의료 시술을 시킨 부분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당시 권씨의 수술 후 장면을 찍은 CCTV를 보면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지혈 조치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민사판결에서 나타난 간호조무사의 불법 시술 장면을 토대로 A병원 소속 의사와 간호조무사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다. 법원은 “단순히 간호조무사가 의료기구만 들고 있어도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벌이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병원은 안하무인 격이다. 권씨 유족은 사고 이후는 물론 “4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지난달 28일 법원 판결 이후에도 병원 측이 진지한 사과는커녕 파장을 줄이는 데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판결 보도가 나가자 명예훼손과 법적 대응 등을 운운하며 본보에 기사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본보 보도로 권대희씨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고 위험이 높은 수술은 환자 동의가 있으면 촬영하자”는 ‘수술실 CCTV 법’ 도입에 대한 여론도 커지고 있다. 국회의원 20명이 참석한 토론회가 열리는가 하면, 법원 판결 직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오른 법개정 청원에는 약 보름 만에 7,000여명이 동참했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대다. 의료계는 여전히 “의사 78%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CCTV로 감시 받으면 누가 의사하겠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25살 나이로 수술실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가 군대에 복무할 당시 모습. 권씨는 턱 부분을 포토샵으로 보정한 사진으로 남게 됐다. 유족 이나금씨 제공
25살 나이로 수술실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가 군대에 복무할 당시 모습. 권씨는 턱 부분을 포토샵으로 보정한 사진으로 남게 됐다. 유족 이나금씨 제공
수술실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 유족이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해달라며 올린 국민청원. 3일 현재 참여자 수가 7,000여명으로 급증했다. 20만명 이상이 동의해야 정부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수술실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 유족이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해달라며 올린 국민청원. 3일 현재 참여자 수가 7,000여명으로 급증했다. 20만명 이상이 동의해야 정부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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