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인들 “참사에 책임감” 추모 합창… 헝가리인 계명대 초빙교수가 행사 기획
“우리 함께 한국인과 헝가리인 희생자를 애도합시다. 머르기트 다리의 한 가운데에서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한국의 국가적 상징을 노래합시다. 서로를 마주보고 한 목소리로 부릅시다.”
3일 오후 6시 30분(현지시간) 허블레아니(인어)호 침몰 현장 부근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머르기트 다리. 이곳에 모인 아마추어 합창단 ‘치크세르더(Csíkszereda)’ 단원들은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해가 7시간 늦게 솟는 이국의 강물 위로 익숙한 가사와 선율이 흘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 채 다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서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악보를 인쇄한, 미리 준비해둔 작은 종이를 나눠줬다. 인도를 가득 메운 인파는 곧이어 차도까지 채웠다. 하지만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없었다. 무심한 다뉴브강 위로 추모의 아리랑은 그렇게 몇 차례 이어졌다.
아리랑 플래시몹 행사를 기획한 이는 치크세르더의 음악감독 아르파드 토트(36)였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출신인 토트 감독은 8년 전부터 대구 계명대에서 초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8년간 한국을 오가며 형제애를 쌓아왔다”며 “이번 참사가 더 슬펐던 것은 그 때문”이라 말했다. 아버지 션 토트(72) 역시 한인 교회를 다니며 한국인들과 어울려 지내는 지한파 헝가리인이다. 아버지도 참사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노란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이날 머르기트 다리를 찾았다
단원 400여명으로 구성된 치크세르더는 헝가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마추어 합창단 중 하나다. 마침 지난해 6월 부다페스트의 군역사박물관에서 아시아 전통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열었다. 그 중엔 작곡가 허걸재의 합창곡 ‘미사 아리랑’도 있었다. 아리랑을 부르자는 제안은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토트 감독은 “한국의 상징과도 같은 아리랑을 함께 불러 위로를 전하고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특별한 애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리랑 플래시몹 일정이 ‘헝가리안-코리안 그룹’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된 뒤 “꼭 참석하겠다”는 글을 남긴 사람들만 해도 400여명에 이르렀다.
플래시몹에 참여하기 위해 머르기트 다리는 찾은 이들은 다양했다. 2시간 30분 넘게 걸리는 세르비아 국경 지대에 사는 노인에서부터 크로아티아 출신 젊은이들도 있었다. 고등학생 마틴 디네쉬(19)는 이날 학교를 마치자 마자 머르기트 다리로 향했다. 교과서를 든 채로 다리로 온 디네쉬는 “사고 소식을 보고 처음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몰랐다”며 “한국인들에게 정말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플래시몹 소식을 들은 디네쉬는 유튜브를 통해 아리랑 선율을 미리 공부하고 왔다.
시민들을 다리 위로 불러낸 것은 참사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들고 다리를 찾은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대학 에바 블레네시 교수는 “관광객을 손님으로 맞이했던 입장에서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단순히 헝가리의 국가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두 나라 사람들의 긍정적으로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부다페스트=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부다페스트=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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