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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이 부른 또다른 갈등, 타워크레인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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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이 부른 또다른 갈등, 타워크레인 파업

입력
2019.06.05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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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대 노총 “무인 타워크레인 폐기해야… 리모컨 조정 안전사고 위험 커” 

 ‘타다’처럼 새 서비스ㆍ기술 등장에 제2, 제3의 일자리 갈등 생길 수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전국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동시 파업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4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멈춰선 타워크레인 아래 한 건설노조 조합원이 서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전국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동시 파업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4일 오전 울산시 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멈춰선 타워크레인 아래 한 건설노조 조합원이 서 있다. 연합뉴스

“국가자격을 소지하고 있는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생존권을 위협 받고 있다. 시한폭탄 소형타워크레인을 즉각 폐기하라.”

4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면서 전국 건설현장의 대형타워크레인 2,500여대(민주노총 1,500대, 한국노총 1,000대)가 일제히 멈춰섰다. 무인(소형)타워크레인은 전문 조종사가 필요 없고 장비 운영비도 적게 들어 도심 속 상가건물,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의 건설현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272대였던 소형타워크레인(등록기준)은 지난해 1,826대로 5배 이상 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해말 4,457대였던 대형타워크레인은 올 5월 4,385대로 감소세다.

양대 노총은 무인타워크레인은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며 파업에 들어갔지만, 무인타워크레인이라는 기술진화에 일자리 위협을 느낀 기존 노동자들의 반발이 이번 파업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외형상 이번 파업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노조는 파업의 명분으로 무인 크레인의 낮은 안전성을 꼽는다. 타워크레인은 건설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들어 올리는데 쓰는 장비다. 3톤을 기준으로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되는데, 소형은 조종석이 따로 없고 리모컨으로 조종하기 때문에 무인타워크레인으로 불린다. 대형크레인은 국가자격검정시험(필기, 실기)을 거쳐야 하지만, 무인타워크레인은 20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조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건설경기 침체로 예전만큼 대형 크레인이 필수적인 대형 공사가 감소한 상황도 파업의 한 배경이다. 지난 3월 전국에서 착공된 건축물 숫자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적은 1만7,351동에 그쳤다. 또다른 이유는 건설주들의 ‘노조 포비아’ 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대부분 노조 소속인 대형 크레인 조종사들과 마찰이라도 빚으면 정해진 공기를 맞추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노조 리스크를 피하고자 상당수가 비노조원인 소형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타워크레인 등록현황 및 사망사고 발생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타워크레인 등록현황 및 사망사고 발생 현황. 그래픽= 강준구 기자

안전문제, 경기침체, 노조리스크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첫날 파업에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 2,300명(민주노총 1,500명, 한국노총 800명)이 모두 참가할 정도로 파업이 추동력을 얻은 근본 원인은 기술 혁신에 따른 기존 노동자들의 불안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유서비스라는 혁신서비스의 등장으로 빚어지고 있는 ‘타다’와 택시 업계의 갈등처럼, 대형 크레인과 소형 크레인 간의 갈등 역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의 등장에 따라 발생한 갈등이라는 것이다. 급속한 속도로 기술ㆍ서비스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탑승해 직접 조종하는 대형 크레인과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무인 크레인 간 갈등은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계는 이번 파업이 혁신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주장을 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소형 타워크레인은 안전성과 경제성, 인력의 유연성 측면에서 장점이 많아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며 “조종사가 크레인에 탑승하지 않아 오히려 지상의 공사현장 주변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고, 사고 시 인명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노조의 행동은) 산업발전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기득권 지키기”라고 주장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아래아 한글’이 대다수 고객을 확보했지만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가 시장을 지배하지 않았느냐”며 “기술의 진보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직종으로의 전업이나 훈련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김예상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무인타워크레인은 안전이 검증된 기술”이라며 “건설현장의 모든 기술은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기술 진화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도 노조가 주장하는 무인타워크레인 사용 금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소형 타워크레인을 사용할지, 대형 타워크레인을 사용할지 선택하는 문제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소형 타워크레인을 운전하는 조종사들도 노조에만 가입돼 있지 않을 뿐 근로자들인 만큼 그들의 일자리를 정부가 임의로 빼앗을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성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안전감시위원회 간사는 “건설사들의 무인타워크레인 선호는 기술 혁신 때문이 아니라 무인화를 통해 안전 비용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소형 크레인의 확산에 대해 비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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