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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의 숨겨진 진실… 한국은 돈, 미국은 도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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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의 숨겨진 진실… 한국은 돈, 미국은 도덕이 필요했다

입력
2019.06.06 15:28
수정
2019.06.06 18:2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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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값싼 자동차와 텔레비전으로 유명해지기 전, 한국은 고아들로 유명했다.”

1988년 한국이 하계올림픽 개최로 떠들썩하던 시절,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기사 한 구절이다. 세계인들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신흥 경제 발전국가보다는 ‘고아 수출국’으로 한국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불편하지만 진실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지금까지 아이 20만명이 해외로 입양됐다. 출생 인구 대비 아동 송출 규모로는 최대다. 이 중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절반을 넘은 11만명에 가깝다. 왜 한국 아이들은 유독 미국으로 많이 보내진 것일까.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과 부교수인 아리사 H 오는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에서 한국의 해외 입양의 기원과 배경을 고찰한다. 한국 해외 입양의 역사를 미국과 한국 관점에서 다룬 책은 처음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 아동의 미국 입양 붐은 한국과 미국의 국가 이익이 맞아 떨어진 ‘은밀한 뒷거래’ 위에서 성립됐다고 설명한다. 먼저 미국이 한국 아이들을 대거 데려온 것은 도덕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와 체제 경쟁을 벌였던 미국은 한국전쟁의 피해로 갈 곳 잃은 아동들을 거두며 전 세계를 사랑으로 품는 ‘선한 부모’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대내적으로도 비(非)백인 아동은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꼭 필요한 존재였다. 인종차별 반대와 평등권의 요구가 높아지던 시절, 미국 사회는 아시아계 아동을 적극 수용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관용의 나라’라고 정당화했다. 저자는 “기독교 이념을 신봉하는 미국인들에게 해외 입양은 인종차별과 공산주의를 박멸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널리 알릴 기회였다”고 설명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에 해외 입양은 국가 역점 산업이자, 초대형 복지 정책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GI 베이비(미군과 한국인 사이의 혼혈아)를 미국에 많이 보내는 게 최고의 복지 사업”이라고 공개 천명했다. 심지어 부모가 있던 아이들마저 고아로 둔갑돼 미국으로 보내졌다. 국가는 민간 입양기관과 짜고 고아 호적을 발행하며 신분 세탁을 장려했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게 미안했던 부모들은 최선의 선택인 줄 알고 따랐다. 매춘부나 미혼모 여성들의 친권 포기는 어머니의 사랑과 의무로 포장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국내 입양이 국가적으로 장려됐으나 뿌리 깊은 혈통주의의 벽은 넘어서기 쉽지 않았다. 미국인 선교사 해리 홀트가 세운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전문기관은 돈 안 되는 국내보다는 수수료 높은 해외 입양에 매진했다고 책은 주장한다. 저자는 “입양을 산업적으로 추동한 것은 결국 한국 정부였다”고 꼬집는다. 국가는 극빈 가정 아동들을 해외 입양 보내는 것으로 국가가 다해야 할 사회복지 책임은 방기했다.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아리사 H 오 지음ㆍ이은진 옮김

뿌리의집 발행ㆍ404쪽ㆍ1만9,000원

입양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모두 이익을 안겼다. 그러나 정작 입양아들의 이익은 유린됐다. 인성이 검증되지 않은 입양 부모로부터 아이들이 폭행을 당하거나 파양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채 강제로 쫓겨나 불법체류자로 내몰린 입양아들이 2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해외 입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해외 입양을 매년 10%씩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지난해에만 303명의 아이들이 국외로 입양됐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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