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도덕성 빈곤 드러낸 강사 대량 해고
정부, 강사법 추가 예산 반드시 확보해야
강사 조직화와 교수ㆍ직원ㆍ학생 연대 필요
지금 한국 대학이 붕괴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대학이 진리탐구의 실천 도량에서 기업 연수원으로 전락하고 있었는데, 8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이번 학기에만 최소 1만여명의 강사가 해고당하였고, 6,655개의 강좌가 사라졌다. 10여년의 세월 동안 학문을 탐구하고 전수해 온 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라진 강좌가 모두 필요해서 설강한 것인데, 필요성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강사 감축을 위해 폐강하였다. 이는 학생들의 수업권과 다양한 진리를 접할 기회를 빼앗고 대학의 학문생태계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자학 행위다.
이에 대해 몇몇 언론이 강사법 때문이라는 기사와 방송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강사들은 유령이었다. 전임 교수와 똑같이 강의하면서도 교원이 아니었고 그 대가는 늘 8분의 1~10분의 1만 받았으며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었고 언제든 잘릴 수 있었다. 이에 맞서서 강사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투쟁하였고, 8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간신히 강사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강사의 교원으로서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이다. 대학은 8월부터 3년간 재임용 절차와 4대 보험을 상당한 정도로 보장하고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동안 초등 학력의 노동자들도 받는 대우를 박사 학위의 노동자들이 이제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량 해고 참사가 벌어지고 있는가. 대학의 여건에 따라 비율이 다를 뿐, 크게 비용 절감, 강의 유연성, 권력, 구조조정 네 가지 때문이다. 대학은 등록금 동결로 재정이 어렵다며 강사의 처우 개선 비용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대학은 언제든 필요에 따라 강사를 부르거나 해고하였는데, 이제 그럴 경우 소송이 가능하다. 이제껏 재단과 대학당국이 독점하고 나머지 권력을 교직원과 학생이 분점하던 권력 구조가 깨지게 된다. 학령인구 감소, 디지털화,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에 대비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이 악덕 기업이 아니라 고등 교육기관이라면 이 네 가지 모두 강사 대량 해고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대학 전체 예산에서 강사들의 처우 개선으로 인하여 추가로 필요한 비용은 0.1%도 되지 않으며 상당 부분은 교육부가 지원한다. 8조원의 적립금을 쌓아둔 상황에서 대학이 재정을 이유로 강사의 대량 해고를 감행하는 것은 지나친 엄살이다. 그동안 대학들이 고급 지식인의 인권과 자존심을 마음대로 유린한 결과물이 강의 유연성이다. 지금이야말로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 가게보다 더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장이었던 것을 반성하고 거듭날 시점이다. 진리를 탐구하고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곳의 필요조건은 구성원의 민주화다. 독일대학처럼 대학 당국, 교수, 강사, 학생들이 동등한 권력을 갖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에 당연히 대비해야 하지만, 가장 약자인 강사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 대학의 상상력과 지식, 도덕성이 지극히 빈곤함을 드러내는 실례다.
아직 길은 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대학의 발전과 국가의 흥망은 비례하였다. 정부가 수만 여 명의 고학력 인재를 길거리로 내몰면서 미래와 일자리 창출을 말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국회와 기획재정부는 강사법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올해 추경이나 내년 예산에 반드시 100% 배정해야 한다. 교육부도 강사 문제에 대해 우선 실태 조사를 하고 작년 8월을 기준으로 강사를 감축한 대학에 대해서는 강력한 감사와 징계를 실시하고 지원과 평가 등 모든 것과 연동시켜서 이로 인한 이득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여 OECD 평균 수준의 고등교육 재정을 확충하고 교육위원회, 국가학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사립대를 공영화하고 사학법도 개정해야 한다. 강사들도 조직화하여 맞서고 교수ㆍ직원ㆍ학생들은 이에 연대하여야 한다. 이는 강사들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대학을 진리탐구의 실천 도량으로 복원시키고 이 나라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다.
이도흠 강사공대위 공동대표,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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