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또다른 화약고, 카슈미르를 가다] <중> ‘공기총’에 뚫려 버린 인권 중>
인도 카슈미르 남부 소피안 지구 출신인 인샤 무스타크(18)는 기자의 질문에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댔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을 땐 깊게 파인 두 눈이 적막함을 뚫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듯했다. 인샤는 ‘2016년 7월 11일’을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날 오후, 밖에서 들려오는 시위대 소리에 15세 소녀는 부엌 창문을 열어봤다. 문을 열자마자 인샤의 얼굴로 쏟아지듯 날아든 건 펠렛건(Pellet Gunㆍ공기소총의 일종)에서 발사된 수백 개의 금속 탄환들이었다.
◇‘돌멩이 시위는 새로운 테러 형태’라며 무기 도입
펠렛건을 한 발 쏠 때마다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탄환통(cartridge) 하나에는 300~500개가량의 ‘자탄(子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탄(母彈) 한 발에 자탄 수백 개가 쏟아지는 집속탄(Cluster Bomb)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다. 그 작은 탄환들이 사방으로 튀며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몸을 파고든다. 2010년 8월 의회당 집권 시절, 인도 중앙정부는 카슈미르 시위진압용 무기로 펠렛건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펠렛건은 비(非)살인(Non-Lethal) 무기’라는 게 당시 정부의 주장이었다. 그 이후 인도의 정치인들, 국방부 관계자들은 ‘돌멩이 시위=새로운 형태의 테러’라는 말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돌멩이 시위 진압’을 펠렛건 도입의 명분으로 삼았다.
다시 2016년 7월 11일로 돌아가자. 인샤는 창문을 열자마자 즉각 의식을 잃었다. 엄마의 비명소리에 몰려든 마을 주민들이 그를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하려 하자, 군대와 경찰은 그마저도 막아 섰다. 분노한 주민들이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3년이 흐른 지금, 인샤는 기자와 마주앉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피안 디스트릭트 병원’에서 스리나가르의 ‘슈리 마하라자 하리 싱(SMHS) 병원’으로, 그리고 다시 델리와 뭄바이로 후송에 후송을 거듭하면서 네 차례의 대형 수술을 받았다.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끝내 시력은 살리지 못했다.
양쪽 시력을 다 잃고도 악착같이 공부한 인샤는 현재 스리나가르에 있는 ‘델리 공립학교’에서 11학년(한국의 고교 2년에 해당)으로 재학 중이다. 선생님의 수업을 반복해서 듣고, 들은 걸 외우고, ‘NVDA(Non Visual Desktop Access)’라는 시각장애인용 독서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했다. 카슈미르 기자인 샤비르(가명)는 “인샤는 그나마 잘 알려진 사례라 그래도 주목을 받은 편”이라며 “카슈미르의 시골 지역으로 가면 잘 알려지지 않은 펠렛건 피해 소녀들이 더 있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에 따르면, 2016년 7월 카슈미르 최대 무장단체인 ‘히즈볼 무자히딘’의 사령관 부르한 와니의 죽음이 촉발한 6개월간의 대규모 시위 사태 당시 최소 14명이 펠렛건으로 숨졌다. 같은 기간 펠렛건으로 인한 부상자는 약 6,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100명이 한쪽 또는 양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펠렛건 피해자 복지기금’(이하 피해자모임)이 밝힌 2016년 이래 사망자 수는 최소 70명이고, 양쪽 시력을 모두 잃은 사람도 92명에 달한다. 인도 일간지 ‘더 힌두’는 지난 1일 다양한 정부기관과 비정부기구 자료를 토대로 2010년 이래 펠렛건 피해자가 1만~2만명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 모든 통계는 시시각각 업데이트가 필요한 수치들이다. 아직도 카슈미르 거리에선 ‘펠렛건의 공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에는 엄마 품에 안겨 시위 구역을 지나던 아기 히바 니사르(생후 18개월)도 눈에 펠렛 탄환을 맞았다. 히바는 ‘최연소 펠렛건 피해자’가 됐다.
◇펠렛건 최연소 피해자는 생후 18개월 아기
라마단 금식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리나가르의 이슬람사원 ‘자미아 마스지드’는 앞서 두 차례의 금요기도회가 금지됐던 탓인지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 안팎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전날 기자에게 “고열과 두통에 시달린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무함마드 아슈라프 와니(27)는 “상태가 나아졌다”면서 사원 인근 약속 장소로 나왔다. 그는 피해자 모임의 대표다. 2017년 9월 병원에서 만난 펠렛건 피해자들이 스스로 조직화해 출범한 이 모임엔 현재 1,332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아슈라프는 몸 전체에 꿰맨 자국이 28곳이나 있다고 했다. 그는 2016년 8월 24일 남부 풀와마 지역 학생 시위 당시 실탄을 맞았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불과 2개월 후 집밖을 걷던 중 이번에는 펠렛건에 얼굴을 맞았다. 한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다른 쪽 눈도 절반 정도만 시력이 남아 있다. 펠렛건 피해자들은 2016년 하반기 인도 군경이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이유 없이 펠렛건을 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증언한다. 아슈라프는 몸에 펠렛 탄환 수백 개를 품고 산다. 열이 오르고 두통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슈라프뿐만이 아니다. 펠렛건 피해자들 다수가 탄환을 몸 안에 지니고 산다. 주로 얼굴, 특히 눈 부상자가 다수다. 의사들은 민감한 부위의 부상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펠렛건을 반드시 금지하라는 것. 국제사회가 왜 이 문제에 침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슈라프가 간절히 외치고 싶어하는 말이다.
피해자모임 사무총장인 아미르 나지르(23)는 “다른 나라에선 동물 사냥에 쓰이는 펠렛건을 사람에게 쏘는 곳이 바로 이 곳 카슈미르”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2017년 6월 22일 풀와마 지구에서 열린 무장반군 세 명의 합동장례식에 참석했던 그는 장례행렬을 향해 날아든 펠렛건 탄환에 맞았다. 법학도인 나지르는 그날 이래 기억하고 집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모스크서 기도하고 나오다 펠렛건 맞기도
피해자들 면면을 살펴보면 펠렛건은 인도 당국의 주장대로 단지 시위 진압에만 쓰였던 게 아니다. 아슈라프가 집밖을 걷다 난데없이 불상사를 당했듯이 평범한 목수였던 사미라 아흐마드 다르(24)처럼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다 펠렛건에 맞은 경우도 있다. “그날(2017년 6월 16일) 남부 아난트나그 시위 현장은 (내가 펠렛건에 맞은 장소인) 모스크(이슬람사원)에서 약 2㎞나 떨어진 곳이었다”고 사미라는 말했다. 그는 스리나가르 병원을 거쳐 펀자브주(州)의 암리차르 지방까지 이동, 무려 여덟 차례의 대형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왼쪽 눈엔 30%의 시력만 남아 있다.
지난달 31일 라마단 마지막 금요기도를 마치고 쏟아진 시민들로 북적대는 거리에서 피해자모임 회원들은 ‘펠렛건 금지’ 캠페인과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보다 나흘 전, 기자가 이 모임을 처음 찾았을 때 만난 일부 회원들은 “사회가 우리를 고립시키고 있다”면서 심리적 트라우마를 강하게 드러냈다. 청년들은 시력을 잃고, 직업을 잃고, 미래에 대한 비전마저 잃었다. 스리나가르 의대 정신의학과가 최근 수행한 ‘카슈미르 지방의 펠렛건 부상 피해자들에게 나타난 정신의학적 상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조사대상(380명)의 68.4%가 눈 부상자들이다. 눈 부상자의 92.95%가 다양한 형태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다른 부위 부상자들의 정신질환 비율(70%)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날 모스크(자미아 마스지드) 주변의 시민들은 피해자모임의 캠페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모금액도 십시일반 차곡차곡 쌓였다. 그사이 모스크 정문 반대편에서 돌멩이 시위가 이미 한창이라는 카슈미르 동료 기자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피해자모임 차량을 뒤로 한 채 지각생마냥 허겁지겁 현장으로 달려갔다.
바로 전날 카슈미르 남부의 쿨감과 소피안 지구에선 ‘실탄 부상자’까지 나왔지만, 시위 위축 효과는 조금도 없었다. 거리 곳곳을 누비며 돌멩이를 가장 열심히 던지던 한 소년은 13년 전 기자가 이 곳에서 봤던, 막대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인도군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던 당시 12세 소년의 그 모습과 똑같았다. 과거와 현재가 달라진 게 있다면, 오늘날 시위 현장에는 ‘펠렛건 공포’가 확실히 엄습해 있다는 점이다. 양쪽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던 시위 현장에서 기자가 반복적으로 들은 말은 이렇다. “펠렛건을 조심하라.” “눈을 (가릴 수 있는 한) 가려라.” “펠렛 탄환이 당신의 몸 어느 곳을 뚫고 들어올지 모른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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