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불시착, Z세대 흔든 20세기 ‘시티팝’(City Pop)
연남동 ‘핫’한 클럽에선 30여 년 전 김현철ㆍ빛과 소금 노래가
진지한 포크송에 치었지만… 없던 장르 명까지 만들어 재발견
지난 2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 클럽 채널1969. 한 사내가 들어서자 빼곡한 사람들 사이로 길이 열렸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듯한 풍경이었다. 클럽은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가리는 관객도 여럿이었다.
아이돌이 뜬 게 아니다. 가수 김현철(50)이었다. 김현철이 DJ 부스 옆으로 가 마이크를 잡자 관객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그의 팬들 사이에선 ‘양평이형’이란 이름으로 친숙한 하세가와 요헤이는 김현철 1집 LP를 흔들었다.
◇악기 버린 김현철 ‘강제소환’ 무슨 일이
이날 클럽의 시간은 채널1969란 이름처럼 거꾸로 흘렀다. 김현철은 1989년 낸 1집 ‘김현철’의 타이틀곡 ‘춘천가는 기차’를 비롯해 ‘동네’ 등을 불렀다. “너의 머리 결을 스쳐 가는 이 바람이 좋은 걸~”. 김현철이 ‘오랜만에’를 부르다 후렴구에 마이크를 관객을 향해 넘기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합창으로 노래를 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음~”.
클럽에 모인 이들 대부분은 20대로 보였다. 김현철 1집이 나온 뒤인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게다가 발표 당시엔 히트하지도 않았던 20세기 노래(‘오랜만에’)를 자기 세대의 문화처럼 즐겼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21세기 힙스터의 ‘독특한’ 음악 소비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김현철은 음악시장으로 ‘강제 소환’ 됐다. 그는 10월에 새 앨범 ‘돛’(가제)을 낸다. 지난달 낸 ‘10집 프리뷰’를 마무리는 하는 작업이다.
김현철의 ‘돛’은 데뷔 시절 그가 들려준 음악 스타일로 채워진다. 김현철이 신작을 내기는 12년 만이다. 김현철은 2006년 낸 9집 ‘토크 어바웃 러브’ 이후 단 한 장의 앨범도 내지 않았다. 음악이 재미없어져서였다고 했다. 그는 작곡할 때 쓰던 악기와 컴퓨터도 다 버린 상황이었다. 최근 본보와 만난 그가 들려준, 음악 작업을 다시 시작한 계기는 이랬다. “까마득한 후배(죠지)가 ‘오랜만에’를 지난해 가을에 리메이크했어요. 아는 후배를 통해선 최근 일본에서 DJ들이 클럽에서 제 1집을 튼다는 얘길 들었죠. 일본엔 온천 여행 간 적 밖에 없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이런 일들을 보며 다시 음악 작업에 용기를 냈죠.”
Z세대의 예상치 못한 관심으로 ‘몰락’한 줄 알았던 옛 가수는 다시 창작에 불을 지폈다. 도대체 대중문화 저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30년 전 일본 ‘거품 경제’에서 태어난 음악
김현철의 소환은 Z세대에 분 ‘시티팝’(City Pop) 바람으로 이뤄졌다. 시티팝은 1970~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이다. 장르 이름에서 엿 볼 수 있듯 멜로디는 세련됐고, 분위기는 도회적이다. 음악적으로는 리드미컬하고 펑키한 베이스, 잘게 쪼개듯 연주하는 화려한 기타 소리를 기반으로 신시사이저와 때론 관악이 어우러져 흥겹고 풍성한 화성이 돋보인다. 오누키 다에코의 ‘선샤워’(1977)와 야마시타 다쓰로의 ‘포 유’(1982) 등이 일본의 시티팝을 대표하는 앨범들이다. 시티팝을 들으면 ‘드라이브’ ‘바다’ 파티’ ‘청춘’ 등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풍요로운 음악은 일본의 ‘거품경제’에서 경제적 뿌리를 내렸다. 음반사들은 당시 최고 연주자를 불러 모아 음악 제작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에서 분 시티팝 유행은 1980년대 본격적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한국까지 번진 유행은 혜은이(‘천국은 나의 것’ㆍ1982)와 윤수일(‘아름다워’ㆍ1984), 도시아이들(‘달빛 창가에서’ㆍ1986)을 거쳐 김현철(‘오랜만에’ㆍ1989), 김완선(‘불빛을 좀 더 어둡게 해줘요’ㆍ1989), 빛과 소금(‘샴푸의 요정’ㆍ1990) 등의 음악으로 표현됐다. 30여 년 전 세상에 나온 음악을 Z세대가 재발견한 것이다.
젊은 층의 시티팝 소비는 2~3년 전부터 이뤄졌다. 홍익대 인근 클럽에선 DJ들이 시티팝을 틀기 시작했고, 유튜브엔 시티팝을 소개하는 영상이 쏟아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시티팝의 아이콘’인 일본 가수 다케우치 마리야의 ‘플라스틱 러브’ 영상이 심심치 않게 공유됐다.
◇ ‘시티팝 LP 원정대’의 등장
시티팝의 풍성한 멜로디는 Z세대에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 2월 채널1969에서 김현철의 공연을 본 대학생 김미소(23)씨는 “컴퓨터로 직조된 소리를 내는 전자음악과 달리 시티팝의 음악을 들으면 악기 연주 소리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결이 살아 있는 소리가 무엇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시티팝이 새로운 문화 조류로 자리 잡은 데는 ‘N포세대’의 등장과 ‘고용 절벽’과 무관하지 않다. SNS에서 ‘플라스틱 러브’를 처음 듣고 시티팝에 빠졌다는 대학생 정모(25)씨는 “세련된 음악은 두말할 것도 없다”면서 “현재의 삶이 워낙 각박해 1980년대 당시 풍요롭고 행복했던 사회의 분위기를 간직한 시티팝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과 사회의 구조적 빈곤이 Z세대를 ‘풍요의 상징’과 같은 시티팝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절망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젊은이들이 풍요로운 ‘리얼 사운드’로 위로를 받는 것”이라고 시티팝 열풍을 진단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시티팝은 달콤하고 유려한 멜로디로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장르”라며 “시티팝 유행은 가장 힘들 때 누군가의 화양연화(가장 좋았던 한때를 뜻하는 말)를 소비하려는 낭만적 도피”라고 말했다. Z세대의 시티팝 소비를 단순히 복고 열풍에서만 찾으면 안 되는 이유다.
시티팝 열풍에 일본으로 ‘시티팝 여행’을 떠나는 Z세대도 등장했다. 직장인 박지민(25)씨는 지난 4월 말에 1주일 휴가를 내 일본으로 ‘시티팝 LP’를 사러 갔다. 박 씨는 “시부야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야마시타 다쓰로와 오누키 다에코, 마츠바라 미키의 LP 세 장을 사 왔다”며 “유튜브에서 ‘플라스틱 러브’를 처음 듣고 이 영상 저 영상 옮겨 다니며 시티팝에 빠졌고, 김현철과 빛과 소금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티팝의 유행으로 K팝 시장에는 시티팝 풍의 노래들이 쏟아진다. 가수 선미가 지난해 낸 ‘블랙펄’과 유빈이 발표한 ‘숙녀’는 모두 시티팝 풍의 댄스곡이다. 일본에서 패션 모델로 데뷔한 유키카는 지난 2월 한국에서 시티팝 풍의 ‘네온’을 내고 활동 중이다. ‘시티팝의 고향’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시티팝 노래로 활동하는 낯선 풍경까지 연출된 것이다. 국내에서 시티팝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티팝 열풍은 세대의 문화 교류로 이어졌다. 요즘 힙스터들에 주목받는 리듬앤블루스(R&B) 가수 죠지는 김현철의 ‘오랜만에’를, 선우정아는 혜은이의 ‘천국은 나의 것’을, 스텔라 장은 윤수일의 ‘아름다워’를 각각 다시 불러 지난해 연달아 냈다. 네이버문화재단의 시티팝 재발견 프로젝트인 ‘디깅클럽서울’ 일환이다. 태연도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리메이크해 지난달 냈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에 태어난 가수들이 당시에 나온 시티팝을 30여년이 지나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바라보는 중년들은 향수에 젖는다. 지난해 극장가를 들썩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으로 다양한 세대가 같은 음악(영국 록밴드 퀸)을 즐기는 문화 교류 현상이 시티팝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직원에 맡긴 사무실 선곡권” 시티팝 프로젝트의 탄생
‘디깅클럽서울’을 기획한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2년 전, 20대 중반이었던 직원이 사무실에서 튼 노래를 듣고 시티팝 유행을 처음 체감했다. 음악 기획 관련 일을 하는 김 대표는 사무실에 틀 음악 선곡권을 직원들에게 줬다.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음악을 접하기 위해서였다. 김 대표는 “한 직원이 ‘플라스틱 러브’ 등 1980년대 일본 음악을 계속 틀기에 ‘왜 이런 노래를 틀어?’라고 했더니 ‘이게 요즘 유행하는 시티팝’이라고 하더라”며 “젊은 세대들에 ‘88올림픽’과 ‘서울’이란 단어가 세련된 이미지로 소비돼 서울이란 도시와 엮어 시티팝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시티팝이란 용어도 최근 2~3년 사이 새로 등장한 것”이라며 “장르를 평단이나 업계가 아닌, 순수하게 청취자들이 음악 분위기에 맞춰 구분 짓고 장르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퍼진 양상이 특이하다”고 의미를 뒀다.
◇” ‘샴푸의 요정’ 사랑과평화도 처음엔 시큰둥”
새삼 조명받는 음악인들은 없던 장르명까지 새로 만들어 옛 음악을 즐기는 세태가 신기할 뿐이다. 유행이야 돌고 돈다지만, 시티팝으로 뒤늦게 호명되며 자신의 음악이 최신 유행으로 소비되는 게 낯설다. 김현철은 “처음에 시티팝이란 말을 듣고 아이스크림 이름인줄 알았다”며 웃었다.
시티팝은 당시 주류 음악 시장에서 환영받는 음악 스타일만은 아니었다.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1970~80년대 유행했던 진지한 포크송에 치여 ‘가벼운 음악’ 취급을 받았고, 정작 주류 음악 시장에선 ‘흥이 약하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빛과 소금의 장기호는 “(록밴드)사랑과평화 멤버들 사이에서도 처음에 ‘샴푸의 요정’에 대한 반응은 딱히 좋지 않았다”라며 “(기타리스트였던)최이철 선배가 ‘이거론 춤 못춘다’며 좀 더 댄스풍의 분위기를 원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장기호의 ‘샴푸의 요정’은 1988년 11월 MBC에서 방송된 베스트극장 ‘샴푸의 요정’에 주제곡으로 처음 쓰였고, 이후 사랑과 평화의 4집(1989)과 빛과 소금 1집(1990)에 다른 버전으로 따로 실렸다. 김현철은 ‘오랜만에’와 ‘동네’를 좋아했지만, 정작 1집 타이틀곡은 ‘춘천가는 기차’를 써야 했다.
장기호는 “퀸시 존스의 앨범 ‘듀드’(1981)를 접하고 대중음악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기 전인 1970~80년대엔 좋은 연주가 담긴 앨범을 만들려는 음악인들의 욕구가 강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 요즘 시티팝이라 불리는 음악을 만들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시티팝은
한국에서 시티팝은 1980년대 가요 문법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에서 탄생했다. 해외의 팝과 록, 퓨전 재즈, 펑키 음악을 섞어 트로트의 ‘뽕끼’를 지우려는 실험이었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손무현을 비롯해 1980~90년대 ‘음악 명가’인 동아기획 소속 빛과 소금, 김현철 등이 주도했다. 캐나다 출신 유명한 작곡가인 데이비드 포스터의 소프트 록과 밴드 어스 윈 앤드 파이어의 디스코풍 음악이 시티팝에 영향을 미쳤다. 시티팝은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1970~80년대 일본음악기획사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유명한 연주자들 데려와 팝과 재즈 음반을 다양하게 만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장르의 혼종인 시티팝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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