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세제 개편안… 사후관리기간 10→7년, 업종 변경 범위 넓혀
대상 기업은 현행 유지… 정치권에선 “더 늘려야” 논란 전망
지나치게 엄격한 사후 의무 때문에 기업인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내년부터 개편된다. 상속세 감면 대가로 상속 받은 기업의 업종과 규모를 어느정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기간’이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줄어들고, 이 기간 동안 변경할 수 있는 업종의 범위도 넓어진다.
다만 재계와 시민단체 모두 서로 다른 이유로 이번 개편안에 반발하는데다, 여야 정치권은 공제대상 기업을 더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1일 당정협의를 통해 이런 내용의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가업상속공제는 중소기업과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상속재산을 200억~500억원 한도로 공제해 세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기재부는 9월 초 국회에 제출할 세법개정안에 이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사후관리기간 줄여 기업 부담 완화
당정은 우선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뒤 업종, 자산, 고용을 일정 범위로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기업인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취지다. 독일이 최대 7년, 일본은 5년을 적용 중인 점도 고려됐다.
사후관리기간 도중 경영상 필요로 업종을 변경할 경우, 허용되는 범위도 한국표준산업분류 5단계 분류체계(대-중-소-세-세세분류) 중 ‘소분류 이내’에서 ‘중분류 이내’로 넓힌다.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거치면, ‘중분류 범위 밖’ 유사 업종으로 변경하는 것도 허용한다.
가령 지금은 밀가루 제분소를 이어받을 경우, 같은 소분류 내에 있는 쌀 도정, 반죽 제조 등으로만 변경ㆍ확장이 가능한데, 내년부터는 중분류인 ‘식료품 제조업’ 안에서 빵, 떡, 과자 등을 만드는 사업도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중분류 상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인 제약업체가 허가를 받으면, 화장품 제조업(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업)도 할 수 있다.
또 사후관리기간 중 20% 이상 자산 처분을 금지하는 현행 규정에 예외 사유도 만들기로 했다. ‘중견기업은 사후관리기간 동안 상속 당시 정규직 근로자 수의 12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도 중소기업 수준인 100%로 완화하기로 했다. 대신 탈세, 회계부정 등으로 처벌 받을 경우, 상속 전 공제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상속 후라도 세금을 추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날 개편안엔 연부연납 특례 대상을 모든 중견기업으로 확대하는 안도 포함됐다. 연부연납은 상속세나 증여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소정의 이자(현행 2.1%)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최대 5년간 나눠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중소기업과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에 한해 분할납부 기간을 최대 20년으로 늘려주는 특례가 허용되고 있는데 특례 대상을 중견기업 전반으로 넓히겠다는 것이다.
◇공제기업 늘어날까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2017년 5년간 가업상속 공제는 372건, 공제금액 기준 9,035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후관리 의무에 대한 종합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부대의견을 채택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공제 이후 의무가 대폭 완화되는 만큼 기업들의 활용도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부연납 특례 등을 통해 상속세 부담을 줄이면 기업 매각 등으로 일어나는 고용불안, 투자저해 요인도 줄어들 걸로 기대하고 있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기업도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의 유연성을 확대했다”며 “기업들도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시민단체 모두 불만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 재계와 시민단체들은 모두 반발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공제 대상 확대, 고용유지 요건 완화 등 숙원 사항이 빠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고, 시민단체는 소수 계층을 위한 특혜가 강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제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 확대를 요구해 왔던 중견기업연합회는 “대상 확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한계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사후관리 기간, 업종유지 의무 완화는 업계의 숙원 중 하나로 환영한다”면서도 “고용 의무는 인원 대신 급여 총액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이 탄력 대응할 여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반대로 가업상속공제 개편이 소수의 세금감면 수단으로 악용될 거란 우려도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고 “가업상속공제가 상속세 면제 혜택이라는 비판에도 허용되는 것은 기업 유지를 통해 고용이 지속되도록 한다는 점”이라며 “그런데도 중견기업의 고용유지 의무를 완화시켜 주는 건, 제도의 근본 취지를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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