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에서 넥타이 부대로 불렸던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이제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 상생하려 합니다.”(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
대표적인 고임금 직종인 금융업 종사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소득불평등이 갈수록 커져가는 데 대한 책임을 나누자는 것으로, 노동계가 중심이 돼 노사가 함께 사회연대에 나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사무금융노조)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사무금융 우분투(UBUNTU) 재단’ 출범식을 열고 “노조가 먼저 사회적 연대의 주체로 나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코사족의 언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연대 정신을 뜻한다. 재단은 앞으로 △제2금융권 비정규직의 차별철폐 및 처우개선 방안 연구 △비정규직 격차 시정을 위한 장학사업 △비정규직 차별개선 지원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대출금리 인하 지원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KB증권 KB카드 교보증권 하나카드 비씨카드 등의 노사가 공동으로 2020년까지 80억원의 기금 출연을 약정했다.
사무금융노조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벗어나려면 사회적 연대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보고 지난해 3월 불평등양극화해소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어 4월에는 사용자 측과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기로 했고, 6월 첫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기금 조성에 대한 노사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이 80여개에 이르는 산하 지부의 노사 양측을 직접 만나 대화와 설득을 했다고 한다. 이후 1년간 각사별 기금 출연 약정 등 출범 준비를 진행해 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생을 꿈꾸는 ‘연대 실험’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2004년 사회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했지만 당시 경영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공공기관 노조가 공공상생연대기금 재단을 만드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일부 사례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계에 다시 연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속노조는 대기업(원청) 근로자의 임금은 적게 올리고, 영세기업(하청) 근로자의 임금은 많이 올리는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으로 산별임금 교섭을 추진하고 있고, 공공운수노조도 비정규직 인건비를 더 많이 편성하도록 지침을 내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는 시대적 과제인 만큼 우분투 재단이 마중물이 돼 노동계의 연대가 다시 확산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 위원장은 “사무금융 노사는 물론 전체 노동계가 사회연대를 지지한다면 우분투 재단 출범이 진정한 의미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목희 일자리위 부위원장도 이날 출범식 축사를 통해 “노동운동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으려면, 조합원들이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며 “우분투와 같은 의미 있는 길을 노동계가 함께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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