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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칼럼] 한국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일까

입력
2019.06.1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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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배려 없는 배척과 배제의 정치판

외우내환 시대는 정치 예술 절실히 요구

양보 조정 타협의 민주적 가치 회복해야

여의도 국회는 오늘도 꽉 막혀 있다. 국회는 일방성이 존재해서도, 존재할 수도 없는 곳이다. 배척과 배제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배려가 넘쳐나야 한다. 절충과 조정, 양보와 타협의 민주적 가치가 물결쳐야 한다. 비스마르크의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처럼, 우리 정치판이 이 외우내환의 시대를 극복할 예술적 가능성을 회복하고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의도 국회는 오늘도 꽉 막혀 있다. 국회는 일방성이 존재해서도, 존재할 수도 없는 곳이다. 배척과 배제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배려가 넘쳐나야 한다. 절충과 조정, 양보와 타협의 민주적 가치가 물결쳐야 한다. 비스마르크의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처럼, 우리 정치판이 이 외우내환의 시대를 극복할 예술적 가능성을 회복하고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지경이면 국회의사당 앞에는 거적이 깔려야 한다. ‘생쇼’라는 비난과 비아냥거림을 듣더라도 여야는 무릎 꿇고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마땅하다. 진행 중인 국회 정상화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식물국회, 동물국회에 이어 유령국회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국회엔 일하지 않고 유령처럼 부유하는 의원들만 있으니 맹비난이 쏟아진다. 국민이 달아준 의원 배지를 슬그머니 떼어내 감춰야 할 판국 아닌가.

때마침 이희호 여사의 소천(召天)에 새삼 DJ와 YS가 떠오른다. 두 사람은 권력을 놓고 평생을 겨뤘다. 정치 노선과 의견 대립으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이고 관계가 뒤틀린 게 부지기수다. 하지만 대화의 끈만큼은 놓지 않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밀실 야합 비난이 뻔해 보여도 국리민복과 민주주의라는 큰 가치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내밀고 잡았다. 함께 시대를 풍미한 JP도 최선 아니면 차선을 택하는, 절충과 조정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지금은 언감생심이고, 참 낭만적이고 그립기까지 한 한국 정치의 옛 풍경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메시지와 가치는 유효하다. 3김 시대를 거치며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는 게 민주주의 정신과 발전에 부합한다는 것은 이제 국민적 상식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는 가까스로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공든 탑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합의는 늘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지고 상호 존중은커녕 배척과 배제만 창궐한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지만 지금 한국 정치는 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청와대든 그 책임에 있어선 모두가 도긴개긴이다. 굳이 그 경중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잘못을 비판하고 책임을 거론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너희들은 안 그랬냐’ ‘너희들은 안 그럴 거냐’고 누워 침뱉기식의 삿대질만 하고 있는 판에 쓴소리가 들릴 리 없다.

자유한국당을 ‘적폐 정당’으로 보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시선은 여전히 강고하다. 그러니 대화하자는 제안과 태도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당은 아직도 야당으로서의 좌표와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이다. 비전도 전략도 없다. 황교안이라는 새 리더십을 내세웠지만 착근은 아직이다. 형식에 집착해 대통령이 따로 만나겠다는데도 싫다고 걷어찬다. 옹졸하다. 경험과 정치력 부족이다. 총선까지 숱한 난관과 고비를 헤쳐갈 수 있을지 예측불허다. 전략도 계획도 없이 장기간 국회 밖을 떠도는 게 그와 한국당의 현주소다. 그러니 의원들도 개인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자기 정치에 몰두하며 중구난방이다. 당대표의 경고에도 막말이 계속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러고도 ‘태극기’에 홀려 재집권을 꿈꾼다니 가당치 않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압박 전술 외엔 무대책이다. 한국당의 막말과 반짝 지지율 회복이 유일한 동력이다. 집권 세력으로서의 관용과 포용력은 물론 제1 야당의 체면을 감안하는 선의와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속 타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청와대가 직접 ‘정당 해산’ 청원 답변을 통해 “투표로 심판” 운운하며 한국당을 겨냥한 것은 지나치다. 우월감이나 자신감, 그리고 오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국회 이슈, 특히 대야 관계는 민주당에 맡기는 게 맞다. 그래야 집권당이 ‘청와대 2중대’ 소리 듣지 않고 책임 있게 의정을 끌어갈 수 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비상한 시기다. 성장의 비전은 안 보이고 고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념ᆞ계층ᆞ세대 갈등과 양극화로 인한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 조정과 중재, 화해를 필요로 하는 이슈들이 쌓이고 있다. 대외 환경은 더 어렵다. 미중 패권 경쟁이 우리를 더욱 옥죄고 있고, 기대를 모았던 북한 비핵화 협상은 교착돼 있다. 우리의 정치 리더십은 이 난관을 어찌 돌파하고 극복할 생각인가. 바라건대, 제발 국민에게 ‘가능성의 예술’을 보여주기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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