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 프로그램을 두고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3일 오전(현지시간) 중동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오만해에서 대형 유조선 2척이 공격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동 긴장완화를 위한 조력자를 자임해 이란을 방문하던 중 이 같은 공격이 벌어져, 중동 정세에 미칠 충격파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요청에 따라 이날 오후 걸프 지역 정세를 논의하는 비공개 회담을 긴급 소집했다.
AFP통신과 일본 NHK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오만해에서 노르웨이 선사 프론트라인의 프론트 알타이르호(마셜제도 선적)와 일본 선사 고쿠카(國華)산업이 임대해 운영하던 고쿠카 커레이저스호(파나마 선적)가 피격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어뢰에 맞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아직 무엇에 의해 공격을 당했는지 구체적인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공격 주체나 배후도 드러나지 않았다. 유조선 피격 뉴스가 보도된 직후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4.5% 급등하는 등 중동정세 악화를 우려하며 시장이 요동쳤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3번의 폭발이 발생한 프론트 알타이르호가 화염에 휩싸이자 선원 23명 모두가 긴급 탈출했으며, 이들은 한국 현대상선 소속의 현대두바이호의 도움으로 전원 구조됐다. 고쿠카 커레이저스호 선원 21명도 피습 직후 배를 포기하고 대피했고, 두 척의 선원 44명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피해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공격은 한 달 전 오만해에서 발생한 공격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피해 상황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 국영방송이 내보낸 화면을 보면 피격 유조선 가운데 한 척에서 굵은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고 붉은 화염이 확인될 만큼 피해가 컸다. 두 척에는 나프타, 메탄올 등 가연성 석유화학 제품이 실린 탓에 자칫하면 배가 폭발해 침몰할 위험도 있었다.
한 달 전인 지난달 12일 역시 오만해에서 유조선 4척을 겨냥한 공격이 벌어졌을 때는 흘수선(배가 잠기는 선) 부근의 폭발로 1.5~3m 정도의 구멍이 나 배가 항해를 멈췄을 뿐, 불이 나거나 선원이 탈출해야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공격의 주체나 배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란이 의심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해온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 폐쇄 가능성을 수차례 경고한 바 있다. 지난 달 공격이 발생했을 때도 미국은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으나,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대이란 군사 행위 명분을 쌓기 위해 꾸민 공작이라며 반박했다.
이날도 이란 정부는 "중동의 모든 나라는 지역 불안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이 친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자신들은 공격 주체나 배후가 아니라고 즉각 부인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이번 공격이 지난해 예멘 인근 홍해에서 발생한 후티 반군의 사우디 유조선 공격과 연관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조사 결과 어뢰 공격으로 확인될 경우 오만해에 자주 출몰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단순한 노략질 수준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군사 행위일 가능성은 부쩍 커진다. 군사 행위로 인한 피격일 경우 중동 지역이 다시 세계 최악의 화약고로 달아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유엔 안보리는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이날 오후 비공개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조너선 코언 주유엔 미국대사 대행은 “오늘 오만해에서 발생한 공격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국도 잇달아 중동일대의 위기확산을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민간선박에 대한 공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프랑스 외무부는 “모든 주변국들에게 자제와 긴장 완화를 촉구한다”면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항행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노르웨이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민간선박에 대한 테러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규탄했다.
한편 러시아 RIA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란이 공격에 연루됐다는) 성급한 결론에 대해 경고하고 싶다”면서 이번 사건이 이란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중 이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피격 선박이 일본과 관계된 화물을 싣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이와 관련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중동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일본과 관계된 화물을 실은 선박이 공격을 당한 정보가 입수됐다”고 밝혔다. 일본은 총리 관저 위기관리센터에 정보연락실을 설치하는 등 관련 정보 수집에 나섰다. NHK에 따르면 공격을 받은 2척 중 1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만 5000톤의 메탄올을 적재한 채 싱가포르로 이동하던 중이었으며, 다른 1척은 나프타 10만톤을 싣고 일본을 향하고 있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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