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통합 말하지만 외려 갈등만 증폭
역사에 대한 애착과 신념은 존중하지만
권력자가 역사학자이고자 함은 경계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지만, 원래 본인이 원했던 전공은 역사였다. 중고교 시절 역사 과목이 가장 재미있었고 성적도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법대를 택한 건 부모님, 그리고 학교 담임선생님의 완강한 반대였다. 요즘도 상당수 학생들이 이런 방식으로 전공 선택을 강요 받고 있겠지만, 역사과를 택하기엔 성적이 너무 아깝다는 게 어른들이 내세운 이유였다. 지금도 역사책 읽는 걸 매우 좋아하는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초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 직접 적은 얘기다.
역사에 대한 애착은 대통령 당선 이후 구체적으로 표출된다. 그 밑바닥에는 역사를 갈등 해소와 통합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취임 초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꺼내든 것이 그랬다. 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건 “영호남의 벽을 허무는” 역할이었다. “보통 가야사가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까지 미치는 이런 역사로 생각들 많이 하는데 사실은 더 넓다. 섬진강 주변, 그 다음에 또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 일대 그리고 금강 상류 유역까지도 유적이 남아 있는 넓은 역사다.“ (2017년 6월1일 수석비서관ㆍ보좌관회의) 영호남에 두루 걸쳐 있는 고대사 조망을 통해 통합의 물꼬를 터보겠다는 의지였다. ”왜 가야사냐” “지역의 경쟁적 개발만 부추길 거다”는 논란을 그렇게 잠재우며 문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을 이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을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보수진영에서는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는 대목에 격분하며 김원봉에 서훈을 주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몰아세웠지만, 문 대통령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역사적 신념은 개인적으로 존중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대통령 개인의 신념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역사로 통합을 이끌어내려는 대통령의 ‘선한 의지’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권력의 힘과 결부되면서 정반대로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다. 그렇잖아도 갈등 요인이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굳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많은 역사 해석을 불쏘시개로 들추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대내외 위기에 직면해 선택과 집중이 너무도 절실한 지금 불필요하게 갈등 전선만 확대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불과 나흘 뒤 청와대가 부랴부랴 나서서 서훈 논란을 잠재울 요량이었다면 이런 아쉬움이 더더욱 남을 수밖에 없다.
경중의 차이가 너무 커서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 국민들은 권력에 의한 역사 해석 독점의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는 역사 해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해 역사를 통치 도구로 활용하려는 데 있었다고 본다. 설령 올바른 해석을 담고 있다 한들 득보다는 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역사가 권력의 제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죽했으면 박 전 대통령조차 이율배반적이게도 야당 대표 시절에는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건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겠는가.
영국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제일 중요한 건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역사 속 인물들의 장단점을 분석해 지도자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 역사를 통치의 도구로 삼으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희망했듯, 역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역사학자로 머물렀으면 한다. 역사는 권력자가 아닌 역사학자에게 맡기는 게 옳다.
이영태 디지털콘텐츠국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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