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가 궁금해?] 이희호 여사 별세와 조문정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정치권에 조문정국이 이어졌다. 고인은 김 전 대통령이 1972년부터 87년까지 가택연금과 해외망명 등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내기까지 함께 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이 여사는 단순한 전직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남녀차별 철폐와 가족법 개정운동을 주도하며 우리사회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거목이었다. 여야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고인의 유지 계승을 다짐했지만 여전히 국회의 문은 잠겨있다. 북한은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조의문과 조화만 전달했다. 본보 국회팀과 외교안보팀이 정치권 움직임을 놓고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이희호 여사를 추모하는 정치권 분위기가 어땠나요. 민주평화당이 사실상 상주역할을 해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정론관 마이크(마이크)=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민주평화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소를 내내 지켰던 원로 정치인인 권노갑ㆍ정대철 전 의원이 모두 평화당의 상임고문입니다. 상주를 자처한 박지원ㆍ최경환 평화당 의원은 각각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정치인들입니다. 평화당은 이희호 여사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에 초비상 상태를 유지했고, 별세했던 지난 10일엔 아침부터 비상대기에 들어가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습니다.
불나방=역대 대통령 부인들과 비교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젊은 기자들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요.
올해는 뚜벅이(뚜벅이)=이희호 여사가 97세나 되다 보니 기자들도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정확히 아는 기자가 많지 않았어요. 퍼스트레이디로 단독 해외순방을 처음으로 했고, 2002년에 유엔 아동특별총회에서 기조연설까지 했죠. 열정적인 여성운동가라는 점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기자들이 많아 이 여사의 별세소식이 그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빨간 양말=이희호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라는 점 때문에 그 동안 이 여사 개인보다는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주로 부각이 됐습니다. 이 여사가 남편인 김 전 대통령에 혹시라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조용히 활동한 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분리해 이 여사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보면 역대 대통령 부인처럼 내조하는 퍼스트레이디라기 보다는 한국 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어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서전을 읽어 보면 이 여사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불나방=김대중ㆍ이희호 두 사람을 처음 소개시켜 준 인물은 김정례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죠. 김 전 장관을 본보가 인터뷰했는데 기사에 담지 못한 얘기들이 더 있나요.
파랑은 동색=김정례 전 장관은 1927년생으로 이 여사보다 다섯 살 아래입니다. 고령으로 외부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인터뷰 섭외를 위해 대한민국헌정회에 문의했을 때도 ‘일단 연락은 취해 보겠지만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다만 종로구 자택으로 전화를 했을 때 김 전 장관은 마침 TV로 고인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이 여사를 회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고인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말하면 좋겠다는 김 전 장관의 뜻에 따라 한국일보와 인터뷰가 이뤄지게 된 것이죠.
마이크=김 전 장관 입장에선 이희호 여사와의 추억이 50~60년 전 일이라 소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해 내기 쉽지 않았죠. 인터뷰 진행 당시 김 전 장관의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김 전 장관이 가족들에게 이 여사와의 추억을 자주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만큼 김 전 장관과 이 여사는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많은 추억을 나눴습니다. 김 전 장관과 이 여사가 과거 찍었던 사진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등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불나방=북한에서 조문단을 보내올 것으로 예상됐는데 빗나간 것은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마음은 콩밭에=이희호 여사가 과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갔으니 당연히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조문단을 꾸려 내보낼 것이란 관측이 많았어요. 도리나 이치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그런데 명분을 따지자니 북한이 처해있는 상황이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조문단을 꾸려 남한과 접촉하는 건 메시지 관리 측면에서 ‘아니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조의문ㆍ조화 전달자로 정하면서 이 여사에 대한 예를 표하긴 했지만, 전달 장소를 ‘북측 지역’으로 한정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하게 해석되는 걸 막으려고 한 것 같아요.
뚜벅이=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은 건 남북 및 북미협상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도 남북정상이 대화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이나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꼼꼼히 전략을 짜고 있는 상황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으로 조문단을 보내면, 조문과 관계없는 현안과 관련한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어 조의만 보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태영호씨 말대로 대남 라인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중인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나방=민주화 투쟁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압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조화를 보냈죠. 이순자씨와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예상치 못한 인물이 조문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상적인 조문객과 이들이 남긴 말은 무엇이 있었나요.
마이크=이순자씨를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조문을 했죠. 이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지만, 김씨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업적을 언급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연세대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강연이 끝나자마자 빈소를 찾았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 외에도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페데리코 파일라 이탈리아 대사, 미하엘 라이터러 EU 대사 등 각국 외교 대표들도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날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지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란 뉴스가 나왔을 때인 오후 5시쯤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이 빈소를 찾았는데요. 이 여사의 삼남이자 상주인 김홍걸씨가 천 전 차관에게 "북한에서 조문단이 와 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꽃등심=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내에선 존경받지만 일본 현지에선 좀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익과 동떨어진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해 ‘우주인’이란 별명으로 불리지요. 일본 정치사에 비(非) 자민당 정권으로 3년반 잠시 등장했던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총리지요.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 입장을 가진 양심적인 분입니다. 조문 온 이유는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 때문이겠죠. 일본내에서 많은 팬들을 보유한 흔치않은 한국의 대통령입니다. 또 박정희 유신정권 때 일본 내 많은 진보지식인층이 ‘민주인사 김대중’을 지키고 지지했다는 묘한 애착같은 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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