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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 공격, 네가 배후” 화살 돌리는 미국ㆍ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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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 공격, 네가 배후” 화살 돌리는 미국ㆍ이란

입력
2019.06.14 18:16
수정
2019.06.15 00:29
5면
0 0

美 “이란 소행, 피격선박 접근 불발탄 회수해 증거 인멸” 동영상 공개 … 이란 “CIAㆍ모사드 자작극” 반박

14일 미군이 전날 오만 해상에서 발생한 2척의 유조선 피격 사건 약 10시간 뒤 해당 선박을 찍은 흑백 영상을 공개했다. 이란 해군이 선체에 접근해 미폭발 폭탄을 제거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게 미군 측의 입장이다. 로이터=연합뉴스
14일 미군이 전날 오만 해상에서 발생한 2척의 유조선 피격 사건 약 10시간 뒤 해당 선박을 찍은 흑백 영상을 공개했다. 이란 해군이 선체에 접근해 미폭발 폭탄을 제거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게 미군 측의 입장이다. 로이터=연합뉴스

13일 오만 해상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을 두고 미국과 이란이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사건 배후로 지목하면서 곧바로 이란군의 소행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동영상을 공개하고 나섰다. ‘중동 정세를 악화시킨 주범은 이란’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한 것으로, 향후 대(對)이란 제재ㆍ압박 수위를 더욱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이란은 미국 또는 그 동맹국의 자작극임을 시사하는 주장과 함께, 관련 증언들을 제시하며 미국 측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공격 주체나 배후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최근 미ㆍ이란 간 대립으로 긴장이 고조돼 온 중동 지역 정세가 또 다시 요동칠 전망이다.

14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동 지역 작전을 맡은 미 중부사령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소행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라면서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이날 공개했다. 미 항공기가 촬영한 영상에는 전날 오만해에서 의문의 피격을 당한 두 척의 선박 중 하나인 코쿠카커레이저스호 측면 동체에 IRGC 해군 소속으로 추측되는 소형 선박이 바짝 붙어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빌 어반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현지시간으로 13일 오후 4시10분, 이란 초계정이 피격 선박에서 (폭발하지 않은) 부착용 폭탄(limpet mine)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 오만해에서 전날 대형 유조선 두 척이 공격을 당해 선원 44명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 당시엔 이란의 소행임을 확신할 순 없었지만, 불발탄을 제거해 ‘증거 인멸’에 나선 이란 해군의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 외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어떤 단체도 이처럼 고도로 정교한 행동을 할만한 자원과 숙련성이 없다”며 “이란이 이번 공격에 책임이 있다는 게 미국의 평가”라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국인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담당 국무장관도 “(폼페이오 장관 말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란은 이런 일을 한 이력도 있다”고 호응했다.

반면 이란은 오히려 미국에 화살을 돌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국영 라디오방송에 나와 “이란은 유조선 선원들을 빠르게 구조했다”며 “폼페이오 장관은 그런데도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다. 놀라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언 이란 의회 외교위원회 특별고문도 “미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페르시아만과 오만해를 통한 원유 수출을 불안케 하는 주요 용의자”라는 트윗을 게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의 자작극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로선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 단정하기 힘들다. 미국이 일단 ‘구체적 증거’를 공개하긴 했으나, 해당 동영상의 장면을 ‘이란의 증거 인멸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기 때문이다. 알지지라 방송은 “소형 쾌속정이 유조선에 접근한 시점은 긴급 구조신호가 접수된 지 10시간 후”라고 지적했다. 피격 사건 발생 후 미군의 현장 감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란 해군이 스스로의 소행임을 자백하는 증거 인멸을 시도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고쿠카커레이저스호 피격 직전 “‘날아다니는 물체(flying objects)’를 봤다”는 선원들의 증언도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선체 부착용 폭탄에 의한 공격’이라는 미국 주장에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사건 발생 해역으로 구축함 한 척을 급파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중동 지역 갈등 상황을 또 한번 휘저었다”며 “세계 원유의 핵심 수송로에 긴장감이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이 사건의 충격파로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2.2% 상승하는 등 국제유가도 일제히 급등했다. 다만, 정유 운송이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만큼 국내 유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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