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이후 14년 만에 18세 선수 골든볼 수상
하비에르 사비올라(38ㆍ아르헨티나), 도미닉 아디이아(30ㆍ가나), 엔리케 알메이다(28ㆍ브라질). 이 이름들을 정확히 아는 독자라면 ‘축잘알(축구를 잘 아는 사람)’ 인증이다.
세 명 모두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최우수선수)을 받고도 성인 대표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선수들이다. 골든볼 수상자가 다 리오넬 메시(32ㆍ아르헨티나), 세르히오 아구에로(31ㆍ아르헨티나), 폴 포그바(26ㆍ프랑스)처럼 성공하는 건 아니다.
한국 남자축구 사상 최초 골든볼 수상의 역사를 쓴 이강인(18ㆍ발렌시아)의 앞에도 ‘슈퍼스타’와 ‘비운의 기대주’ 두 갈래 길이 펼쳐져 있다. 한국은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강인은 이번 대회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당당히 골든볼을 품에 안았다. 아시아 선수로는 2003년 자국 대회에서 수상한 이스마일 마타르(36ㆍUAE) 이후 두 번째고, 우승팀이 아닌 나라에서 골든볼 수상자가 나온 건 2015년 뉴질랜드 대회(우승 세르비아) 아다마 트라오레(24ㆍ말리)가 마지막이었다. 18세 선수의 골든볼 수상은 메시 이후 14년 만이다.
이강인은 기존 한국 선수들과 ‘축구 DNA’가 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우크라이나와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 본 박지성(38)은 “이강인은 어떤 선수를 상대해도 자신감을 갖고 여유 있게 축구를 한다”고 칭찬했다. ‘날아라 슛돌이’로 잘 알려졌듯 재능을 타고난데다 만 열 살 때 스페인으로 건너가 기본기부터 배우며 한 단계 수준 높은 축구를 몸에 익힌 덕에 3~4명이 둘러싸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압박을 벗어난다. 이강인의 골든볼 수상을 결정한 건 FIFA의 기술 전문가 집단인 TSG(테크니컬스터디그룹)다. 그의 기량을 세계 전문가들도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강인이 실력만큼 바른 인성을 갖췄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유럽 리그에 여러 선수들 보낸 국내 유명 축구 에이전트는 “앞으로 닥칠 수많은 고비를 이겨낼 수 있느냐는 결국 선수의 인성에 달렸다”며 “이강인 아버지(태권도 관장 출시 이운성씨)가 아들을 바르게 키웠다는 평이 자자하다”고 귀띔했다. 이강인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다른 선수보다 두 살 어리면서도 “막내 형”이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한 축구 전문가는 ‘간결한 볼 터치’와 ‘체력’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이 전문가는 “이강인이 두 살 위 선수들 사이에서 이 정도 경기력을 보였다는 건 아주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성인 무대를 풀로 소화할 체력은 부족해 보인다. 볼을 갖고 있는 시간도 너무 길다. 공을 갖고 있을 때마다 수비수들과 경합을 하고 체력 소모가 심해진다. 좀 더 빨리 볼 처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강인이 소속 팀으로 돌아가 얼마나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 그는 임대 등을 고려 중이다. 스페인 언론들도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다음 시즌 1군에 합류시킬지 다른 팀에 임대를 보낼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는 보도를 앞다퉈 내놨다.
만 18세 118일의 이강인(6월 16일 기준)은 아직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다. 지난 3월 파울루 벤투(50) 한국 국가대표 감독에게 부름을 받았지만 그라운드는 밟지 못했다. 페이스로 따지면 이강인은 한국 축구 최고의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고종수(41ㆍA매치 데뷔 18세 80일, 득점 18세 87일)나 손흥민(18세 175일, 18세 194일)보다는 조금 늦은 편이다. 그가 언제쯤 성인대표 데뷔전을 치를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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