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피격 사태 긴장 고조… 이란, 핵합의 이행 축소 2단계 조치
세계 원유의 30%가 지나는 길목인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13일(현지시간)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공격 사태의 책임 화살을 이란에 돌리자 이란은 핵합의 이행 범위 축소를 발표해 맞대응에 나섰다. 미국의 이란 핵합의(JCPOA) 탈퇴와 유럽 측의 미온적인 태도가 이유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이란을 상대로 군사 옵션을 꺼내 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일본에 이어 동맹국인 독일도 이란의 책임을 입증할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17일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는 2단계 조치를 발표했다. 베흐루즈 카말반디 이란원자력청 대변인은 “27일이 되면 핵합의에 따라 지금까지 지킨 저농축 우라늄의 저장 한도(300㎏)를 넘기게 된다”며 “나탄즈 농축 단지에서 저농축 우라늄 농축 속도를 4배 늘렸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즉각 이란을 비난했다. 개럿 마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란의 핵 공갈은 보다 커진 국제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란 정부는 미국의 일방적 핵합의 탈퇴 1주년을 맞은 지난달 8일, 핵합의에서 규정된 핵프로그램 동결과 축소 중 일부의 이행을 중단하는 1단계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이 지난 4월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새 자금줄을 확보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유조선 피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혁명수비대가 중동지역 친이란 무장조직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전했다. 혁명수비대 고문과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건설 사업을 통해 새로운 자금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하닌 가다르 워싱턴인스티튜트 객원 연구원은 “혁명수비대는 미국의 제재를 비웃는 듯 시리아 내 헤즈볼라에 계속 돈을 보낸다”고 주장했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16일 CBS 방송에 출연해 “미국은 (이란과 관련해)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몇 차례에 걸쳐 보고를 했으며 우리는 억지력을 복원할 수 있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했다. 군사적 옵션 포함 여부에 대한 질문에도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같은 날 폭스뉴스에 출연해서도 “우리는 (이란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적이 됐든 그 외 다른 것이 됐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인터뷰에서 “정보당국은 (유조선 피격과 관련해)많은 자료와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는 이 가운데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한국과 중국ㆍ일본을 거론하며 “중국의 경우 80% 이상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하며 한국과 일본과 같은 나라들도 이들 자원에 엄청나게 의존한다”며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항행의 자유를 항상 지킨다. 우리는 그(호르무즈) 해협이 계속 열려있게 하는데 깊은 관심이 있는 국가들을 확대, 우리가 이 일을 해나가는데 도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동 원유에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상대로 대이란 전선을 확충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편, 미국이 제기하는 ‘유조선 피격 이란 책임론’과 관련해 일본에 이어 동조하지 않는 동맹국이 또 나타났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피격 유조선 중 한 척인 고쿠카 커레이저스호에 접근해 선체에 부착된 미폭발 기뢰를 제거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미국이 공개한 것과 관련해 “이 영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고 16일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WP는 유럽연합(EU)의 한 고위 외교정책 고문과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도 비슷한 요청을 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도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16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근거 없는 비방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며 미국의 증거제시에 미심쩍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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