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 바로 알기’ ⑥최준호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리 아이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조현병이 정말 그렇게 무섭나요?” “제 자식도 조현병 환자인데… 다 제 탓인 것 같아요.”
조현병 환자가 엽기적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범죄와 하등 관계가 없을 법한 아주 유순한 조현병 환자의 부모들조차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극히 일부 조현병 환자만 흉악한 죄를 저지르는데 많은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죄를 저지른 것 같이 자책한다.
조현병이 범죄와 연결돼 공포의 대상이 된 데는 사회에 만연한 편견이 일조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2016년)에 따르면 비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인 1.4%인데 비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0.1%에 불과하다. 조현병은 정신장애의 일부이니,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만 따지면 0.1%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흉악 범죄자들 대부분 정신 장애와 거리 멀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극히 낮은데, 정신장애인 범죄에만 유독 예민하게 반응할까? 이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정신장애를 사람들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엽기적인 사건을 접하면 ‘제 정신이면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제정신이 아닌 상태는 사실 의학적 정신장애와 거리가 멀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의 범인을 조현병 환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방화범 김대환은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시 정신질환자로 잘못 보도돼 사람들이 오해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엽기적 범죄를 저지른 유영철(2004년 21명의 연쇄 살해), 김동민(2005년 GP 총기난사로 장병 8명 살해), 정남규(2006년 13명의 여성 연쇄 살해), 채종기(2008년 국보1호 숭례문 방화), 정성현(안양 초등학생 2명을 포함 다수의 여성 살해)은 사건 당시 모두 정신병이나 조현병 환자로 지목됐지만 5명 모두 정상이거나 인격장애인 것으로 판명됐다.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은 왜 정신병을 앓는 사람을 범인으로 생각할까.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들으면 안심하는 아이러니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소위 정상인이 엽기적인 죄를 저질렀다면 복잡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잘못된 교육 때문이 아닌지, 너무 느슨해진 법 때문이 아닌지, 사회를 향한 증오 때문이 아닌지 등등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라면 상대적으로 문제는 간단해진다. 정신병 관리 문제로만 치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조현병은 정신병의 일부일 뿐… 치료 못 받는 게 문제
조현병이 공포의 대상이 된 데는 사람들이 조현병과 정신병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건강의학과가 전문 분야가 아닌 의사들조차 이들 질병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폐렴 원인균이 다양해 치료와 예후가 다르듯이 정신병도 여러 종류가 있고 조현병은 그중의 하나다.
기침을 공통 증상으로 하는 폐렴처럼 환각과 망상을 공통 증상으로 하는 정신병이 있다. 환각과 망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는 위험할 수 있다. 판단력이 떨어져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조현병, 조울증, 망상장애, 단기 반응성 정신병, 정신병적 우울증, 기질성 뇌증후군 등에서 보일 수 있다. 이를 통틀어 정신병이라 칭한다.
조현병이 아닌 다른 정신병적 상태와 관련된 행동의 문제를 조현병의 문제로 연결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무슨 사건이든 정신병이 이슈가 되면, 언론에서는 조현병 관련 사건들이 모두 반복해 열거된다.
조현병 유병률은 1% 정도다. 우리 주변 100명 가운데 1명이 조현병 환자라는 뜻이다. 엽기적인 범죄가 모두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것이라면 우리가 보고 듣는 뉴스는 매일 같이 조현병 환자의 범죄사건으로 뒤덮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뉴스는 아주 적다. 그조차 조현병과 관련 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일이 아주 흔하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가 끔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이는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극히 일부의 문제이지, 조현병 환자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은 세계적이다. 당연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수준도 높고, 환자가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회복의 길로 가게 된다. 정신질환자들의 성공적 사회복귀를 위해 정부는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우리의 의료수준은 더욱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지난해 경기 수원시 통합정신건강센터 건립 계획이 지역 주민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쳤다. 건립 부지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유치원생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정신질환자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56.4%)’,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60.6%)’고 하지만, ‘내 주변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싫다(73.9%)’, ‘아이들을 돌보게 해선 안 된다(80.4%)’고 했다. 일반인의 생각에 모순과 편견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이제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편견을 걷어내고,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정책적 고려와 사회적 지지가 필요한 때이다.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사회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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