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라이벌전의 모든 것
서울 vs 수원 88번째 ‘슈퍼매치’3만명 넘는 관중 최고의 흥행
경상도 포항-울산 ‘동해안더비’1990년 시작 뼛속까지 라이벌
시장 입씨름이 발단 ‘깃발매치’걸그룹 때문에 생긴 ‘전설매치’도
지난해 역대 ‘슈퍼매치’ 최소 관중(1만3,122명)을 기록하며 ‘슬퍼매치’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FC서울과 수원삼성의 88번째 슈퍼매치가 열린 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킥오프 전부터 양팀 서포터즈(응원단) 응원전이 뜨거웠다. 상암벌이 빨강과 파랑으로 가득 물든 가운데 홈팀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과 원정팀 수원삼성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선수들의 몸짓과 심판 판정, 슈팅 하나하나에 팬들의 환호와 탄성을 내질렀다.
이번 시즌 K리그 최다 관중(3만2,057명)이 몰린 이날 경기는 시원한 난타전이 펼쳐진 끝에 FC서울의 4-2 승리로 끝났다. 이날 승리로 통산전적에서 앞서기 시작한 서울(33승23무32패) 팬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수호신 의장을 맡고 있는 박성혁(39)씨는 “슈퍼매치는 절대 지면 안 되는 경기”라며 “쉽게 말해 국가대표팀의 한일전만큼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비 매치란 보통 같은 지역이나 인접 도시를 연고로 하는 팀 간의 맞대결을 뜻한다. 이날의 승리는 승점 3점 이상을 의미하기에 선수들과 감독, 팬들의 승부욕은 더욱 불타오른다. 최용수 FC서울 감독도 “다른 경기와는 분명 다르다”며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뒤따른다”고 토로한다.
슈퍼매치는 K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전이다.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는 전 세계 더비를 소개하며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를 7번째로 언급했다. 20년 전 안양LG와 수원삼성의 ‘지지대 더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보통 안양LG가 FC서울로 이름을 바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터를 잡은 2004년 이후의 경기를 슈퍼매치라 부른다. 2008년 12월 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은 양팀 팬들이 꼽은 최고 명승부 가운데 하나다. 후반 막판부터 내리던 함박눈과 함께 수원이 2-1로 승리하며 4년 만의 우승을 확정 지었다. 출범 100년이 넘는 해외리그와 비교하면 K리그는 37년이란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슈퍼매치를 비롯한 라이벌전은 K리그의 다양한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으며 팬들의 관심을 이끄는 강력한 흥미 요소로 자리잡았다.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더비’는 K리그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경상도를 대표하는 양팀의 대결로, 과거엔 ‘영남더비’라고도 불렸다. 1973년 창단한 포항은 실업축구부터 매해 전국연맹전 우승을 휩쓴 전통의 강자였다. 그러던 중 현대호랑이가 인천과 강원을 거쳐 1990년 울산에 자리잡으면서 양팀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2001년 울산 출신 김병지의 포항 이적, 2009년과 2011년 포항 출신 오범석ㆍ설기현의 울산 이적은 양팀의 라이벌 의식을 더 부추겼다. 포항이 ‘울산은 포항 승점자판기’ 응원가를 부르면, 울산은 반대로 ‘고철 덩어리’라 놀릴 정도다.
팬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기는 2013년 12월 K리그 클래식 최종전이다. 리그 1위 울산(승점 73점)과 2위 포항(승점 71점)이 우승을 걸고 맞붙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해병대 출신으로 포항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김원일(33ㆍ제주)이 후반 추가시간 결승골로 팀의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이끌었다. ‘호남더비’는 전북과 전남의 대결을 뜻한다. 두 팀은 1994년 나란히 창단해 20년 넘도록 라이벌 역사를 쌓았다. K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하는 전북이 우세하지만 전남이 2015년 4월 홈에서 전북의 리그 22경기 무패행진을 마감시킨 적도 있다.
지역 더비는 특히 K리그 클럽들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 많다. 수원삼성과 수원FC의 ‘수원더비’, FC서울과 인천의 ‘경인더비’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남부 도시간 맞대결인 성남과 수원삼성의 ‘계마대전(마계대전)’도 인접 지역 강호들 간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계마대전은 과거 성남 일화 당시 양팀 마스코트였던 천마와 아길레온(상체는 독수리, 하체는 사자인 상상의 동물)에서 단 이름이다.
‘현대’ 간판을 함께 달고 있는 울산과 전북은 ‘현대가 매치’로 불린다.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아래 탄탄한 전력을 꾸준히 유지해 온 팀들간 대결이라 대체로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왔다. 특히 올해엔 K리그1 1위와 2위를 달리며 ‘투톱’체제를 갖춰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포스코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포항과 전남의 매치는 ‘제철가 매치’로 불려왔다.
시민구단의 당연직 구단주인 시장들끼리 입씨름을 벌이다 만들어진 라이벌전도 있다. 성남과 수원FC의 ‘깃발매치’다. 2016년 5월 현재 경기도지사를 맡고 있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패하는 팀 연고지 시청에 이긴 팀 깃발을 걸자“고 제안한 걸 염태영 수원시장이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결국 승리한 팀이 상대 홈 구장에 구단기를 내거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웃지 못할 탄생 비화를 가진 더비도 있다. 전북과 FC서울의 ‘전설매치’는 서울이 2010년 3월 홈개막전에 가수 티아라를 초청하며 촉발됐다. 이날 티아라는 FC서울이 아닌 전북의 팀 컬러인 연두색 의상을 맞춰 입어 원정 팀인 전북 팬들의 환호를 받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고, 게다가 이날 결승골로 전북의 1-0 승리를 이끈 심우연이 친정팀을 상대로 권총 세리머니를 하며 새로운 라이벌 관계가 생겨났다. 호남더비와 깃발매치, 수원더비는 현재 해당 팀들이 K리그1, 2로 나뉘어 향후 리그 승강이나 FA컵이 아닌 이상 성사되기 어렵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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