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별 선택지 있는 모험게임 같은
넷플릭스 제작 오지 탐험 시리즈
유저가 BTS 매니저가 되는 게임
원작과 다른 결말 웹툰, 동화 등
‘소비자 능동성 강화’ 장르 불문 확산
#‘중앙아메리카 오지로 말라리아 백신을 운반하다 실종된 박사를 찾아라.’ 사나운 야생동물이 득실대는 울창한 정글에서 시작된 미션. 박사의 마지막 위치로 향하다 갑자기 깊은 골짜기가 등장하고 2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없는 통나무를 밟고 건너갈 것이냐, 위험해 보이지만 타잔 처럼 머리 위 덩굴에 매달려 넘어갈 것이냐. ‘통나무’를 클릭한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순간, 통나무가 부러지며 아래로 추락해 버린다. ‘미션 실패.’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매니저님~ 왜 요즘 안 와요? 바쁘신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와 살갑게 통화를 한다. 며칠 뒤 멤버들이 지낼 새 숙소를 구해야 하는 상황. “남향이어야 해요”, “1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어야 하는데”, “뛰어도 문제없게 1층집이 좋아요.” 온갖 요구사항을 쏟아내는 멤버들과 왁자지껄 대화를 하며 숙소를 찾아 나선다.
미션 수행 게임처럼 보이는 첫 번째 작품은 생존 전문가로 유명한 베어 그릴스가 출연하는 넷플릭스의 오지탐험 시리즈 ‘당신과 자연의 대결’이다. 방탄소년단과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팬이 쓰는 웹소설 ‘팬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 같지만 넷마블이 26일 전 세계에 출시하는 게임 ‘BTS월드’의 맛보기 장면이다. 게임과 영화,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두 작품을 관통하는 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시청자이자 유저인 ‘나’다.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베어 그릴스가 박사를 구할 때까지 시청자는 수 많은 선택지를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박사를 찾아 나서는 과정도, 걸리는 시간도 달라진다. 생존과 관련된 위험한 상황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게 된다. BTS월드에선 게임 유저가 숙소 구하기 등 멤버들과 실감나는 일상을 보내며 좋은 결과를 낼 때 아이템 등 보상이 주어진다. 작가가 미리 정한 단일 스토리를 전달 받던 방식에서 이용자가 작품과 생생한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스토리 방향과 결말을 만들어 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인터랙티브 콘텐츠 장르불문 ‘영토확장’
최근 구글 앱 장터에는 신생 개발사 시나몬게임즈의 ‘메이비’가 인기 급상승 게임 1위에 올랐다. 시나몬게임즈는 올 초 네이버웹툰과 모바일 엔터테인먼트 업체 봉봉이 합자해 설립한 곳으로 인터랙티브 게임들을 여러 개 모아 플랫폼 형태로 지난달 29일 출시했는데, 2주 만에 다운로드 50만건을 돌파했다. ‘오늘도 사랑스럽개’ 등 인기 있는 네이버웹툰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한 게임들이 담겨있다.
기존 웹툰은 작가의 시나리오대로 구성된 장면을 스크롤을 내려가며 읽는 일방향 콘텐츠이지만, ‘메이비’에선 게임을 하는 이용자가 등장인물 중 본인 캐릭터를 골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중요한 순간에 직접 선택을 내린다. 원작 웹툰과 다른 인간관계를 맺고 연애를 하거나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네이버는 지난해 12월 비슷한 방식의 오디오북 ‘동화 만들기’를 출시했다. ‘인어공주’, ‘아기돼지 삼형제’ 등 익숙한 동화를 듣다가 아이들이 특정 상황에 원하는 행동을 골라 선택하면, 그에 따라 신선하고 다양한 결말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한 건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와 만나면서부터다. ‘당신과 자연의 대결’에 앞서 넷플릭스가 작년 12월 첫 선을 보인 인터랙티브 영화 ‘블랙 미러: 밴더스 내치’는 시청자들이 아침 식사로 먹을 시리얼 종류까지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선택이 쌓여 생각지도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영국 가디언은 “미래형 드라마가 등장했다”고 호평했었다.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역시 시청자가 줄거리를 바꾸는 자체제작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CJ ENM은 오는 8월 인터랙티브 영화를 유튜브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하나의 영상이 끝나면 까만 화면에 몇 개의 선택지가 썸네일(미리보기) 형태로 제시되고 시청자가 클릭하면 그 선택에 해당하는 영상이 재생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영상 외 썸네일 속 영상들은 일반 검색 화면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직접 탐험하며 스토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시청각 요소에 이어 ‘능동성’에 주목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몇 가지의 보기 중에서 이용자가 ‘선택’을 하는, 동일한 구조를 갖는다. 콘텐츠에 대한 충성 고객을 늘리기 위해서는 ‘몰입감’이 중요한데, 그래픽, 음향 등 몰입을 높이는 기존의 다양한 요소들에 이어 이제 ‘능동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TV를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채 보는 ‘린 백(Lean back)’ 미디어라고 부르는데, 앞으로의 콘텐츠들은 적극적으로 몸을 내밀고 집중하는 ‘린 포워드(Lean forward)’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상의 몰입은 이용자가 실제 콘텐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래서 터치, 클릭 등으로 구현 가능한 능동성, 즉 선택권을 쥐어주고 사용자가 스토리 조각들을 재조립하는 형태를 택한 것이다. 제작 업체들은 선택지에 따른 경우의 수대로 스토리맵을 짜고 각 전개 방향에 맞는 수많은 장면들을 제작해야 한다. 인터랙티브 콘텐츠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선택하는 능동적 행위에 따라 최대한 많은 결말을 수집하면서 재미를 찾는 적극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5세대(G) 통신 시대를 맞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초고용량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5G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 차세대 실감형 미디어를 구현하는 기반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실감형 미디어 속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물건을 만지는 등 이용자와 콘텐츠 사이 상호작용을 극대화한다면 상상만 하던 몰입감을 실제 구현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별 이용자들의 반응을 정교하게 수집해 취향과 정보를 자세하게 파악하면 맞춤형 광고 등 새로운 수익모델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시나몬게임즈 인터랙티브 게임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홍두선(36) 프로듀서는 “콘텐츠는 항상 이용자들이 원하는 소비 방식을 찾아 변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홍 프로듀서는 “과거 TV 등 미디어는 수동적 소비 형태였고, 게임은 극도로 집중해 전투를 벌이는 형식이었는데 미디어는 소비자를 더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게임은 피로도를 줄이는 ‘자동사냥’ ‘자동전투’ 등의 기능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며 “적절한 수준의 능동성에 대한 고민이 최근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균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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