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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편견 백태… “햇병아리가 뭘 알아” “애도 안 낳아본 게”

입력
2019.06.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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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 젊은 정치] <4> ‘청년’ 굴레를 거부한다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에서 ‘영감’이라 불리는 국회의원의 전형적 이미지가 유권자의 뇌리에 남아있는 한, 다양한 국민 얼굴을 반영하는 의회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배우한 기자
여의도에서 ‘영감’이라 불리는 국회의원의 전형적 이미지가 유권자의 뇌리에 남아있는 한, 다양한 국민 얼굴을 반영하는 의회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배우한 기자

“아직도 지역구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국회의원 선거를 ‘고을 원님’을 뽑는 거라 생각하더라고요. 유세를 할 때마다 ‘젊은 애는 뽑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변호사, 판ㆍ검사 같이 사회적 지위를 갖춘 경우라면 몰라도, 이력이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은 그 인식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요. (오창석 전 더불어민주당 청년정책연구소 부소장ㆍ20대 총선 부산 사하을 후보)”

‘영감.’ 여의도 정치권에서 보좌진이 국회의원을 칭하는 은어다. 새카만 머리의 40대 초선 의원이라도 배지를 달면 ‘영감’이 되어 버린다. 본디 조선시대 고관(高官)을 일컫고, 오늘날 고위 관직자나 남성 노인을 뜻하는 어휘가 유독 여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은 ‘평균 55.5세ㆍ41억원 재산ㆍ남성’이라는 20대 국회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정치는 이미 ‘제론토크라시(고령자 지배체제 혹은 고령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지배체제)’의 터널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

정치 노쇠화의 그늘 아래에서 유권자들의 인식도 연공서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제도와 정당시스템이 젊은 정치 신인의 진출을 구조적으로 원천봉쇄하는 상황(한국일보 7일자, 17일 자 보도)에서, 아등바등 역량을 키워 출마한들 유세 현장에서 “어린 애들이 뭘 아느냐”는 맥 빠지는 반응과 맞닥뜨린다. 한국일보가 만난 취재원들의 경험을 요약하면, 유권자가 젊은 정치인을 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아직 기회가 많은 햇병아리로 보거나. 둘째, 젊은 후보가 여성이기까지 하다면 ‘성(性)적 대상’으로 보거나.

“저는 진지하게 사활을 걸고 출마했는데, 자꾸 만나는 분들마다 이번엔 연습이라 생각하래요. 단체장 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느냐면서요.”

젊은 정치인에게도 선거는 두 번 돌아오지 않을 중차대한 일이건만, 유독 젊은 후보는 “다음에 기회가 많다”며 가로막히는 표심을 경험한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마포구청장 후보로 나선 조용술 사단법인 청년365 대표는 이러한 현상의 근간에 ‘영감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감 소리를 듣고, 의전을 당연시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자주 비쳐지다 보니 국민 역시 정치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양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선거 운동 중 유권자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 여전히 국회의원을 옛날 과거 급제한 사람을 보듯 하는 것 같아요. 정치가 ‘나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랏일을 하듯 전문적인 이야기를 쏟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여전하고요. 이러한 유권자의 생각이 다양한 얼굴이 국회에 들어가는 데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6ㆍ13 지방선거 왕복근 서울시 관악구의원 후보)

젊은 여성 후보는 ‘청년이라서’ ‘여성이라서’ 거리에서 각종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지난 선거에서 마포구의원 무소속 후보로 나선 차윤주(37)씨는 아침 출근길 유세 현장에서 두 번이나 또래 남성으로부터 얼굴에 침을 맞았다. 바로 옆에 있던 50대 남성 후보에겐 그런 일이 일어날 리 만무했다. 그에게는 “애도 안 낳아 본 여자가” “결혼도 안 해본 여자가 나와서 뭘 하려고 하느냐” “젊은 게 정치물만 들어 시집은 다 갔다”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도 쏟아졌다. 차씨는 “제가 어리다고 하는데 사실 어리긴 뭐가 어리느냐”라며 “30대면 사회생활 한 지 10년이 넘고, 프랑스 대통령과도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나이는 27세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당시 36세)를 비롯한 다수 586 그룹 정치인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치하기 좋은 나이’가 따로 없다는 것은, 과거 세대교체의 역사가 이미 방증한 바. 21대 총선이 9개월 남짓 남은 시점, ‘어린 놈이 무슨 정치냐’는 유권자의 편견 앞에서 젊은 도전자들은 입을 모아 외친다. “(정치하기에) 내 나이가 어때서.”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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