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교육청 자의적 평가에 심각한 우려…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 불가피”
‘자사고 등 단계적 폐지’ 공약과 분리 위해 서둘러 입장 발표한 듯
청와대가 21일 전북도교육청의 전주 상산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불가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북교육청의 재지정 평가 기준과 절차가 과도하게 자의적이라고 보고 교육부가 지정 취소 협의 과정에서 ‘부동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가닥을 잡았다. 청문회 등 남은 절차가 있음에도 청와대가 서둘러 결론을 내린 데는 학생ㆍ학부모 등 교육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과 관련해 “(전북교육청의) 자의적 평가 기준과 절차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교육부의 부동의 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지 않으면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은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된다. 앞서 2014년 경기도교육청이 안산 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결정할 때도 교육부가 부동의하면서 결정이 번복된 바 있다.
청와대 내에서는 전북교육청이 상산고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채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독 전북교육청만 다른 시ㆍ도교육청과 달리 재지정 기준점수를 교육부 권고안(70점)보다 10점 높인 것부터 형평성ㆍ공정성 측면에서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전북교육청이 전날 “상산고가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점수(80점)에 미달한 79.61점을 받아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발표하자, 상산고 측은 “다른 시도 자사고의 경우 70점만 받아도 그 지위가 유지된다. 그 부당성을 만천하에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행정소송 등을 예고하며 강력 반발했다.
청와대는 또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평가에서 사회통합전형을 평가지표에 포함시킨 것 또한 교육부 현행 법령에 어긋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자사고 제도가 생기기 전에 ‘자립형 사립고’로 설립됐다 현행 자사고로 전환된 경우 사회통합전형이 의무사항이 아닌데도 무리하게 평가지표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상산고를 비롯해 서울 하나고, 울산 현대청운고, 강원 민족사관고, 전남 광양제철고, 경북 포항제철고 등 전국 6개 자사고가 이에 해당된다. 실세 상산고는 31개 평가지표 가운데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선발 지표가 4.0점 만점에 1.6점을 기록했다. 재지정 기준치인 80점에 불과 0.39점 부족했던 것에 비춰보면 지정 취소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북교육청의 이번 결정이 마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자사고ㆍ외고ㆍ국제고의 단계적 폐지 정책의 일환으로 비춰지는 데 대한 부담 또한 적잖이 작용했다. 전북교육청의 결정과 확실히 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될 수 있고, 자칫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 동력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특히 전북교육청 결정 하루 만에 청와대가 예상 외로 서둘러 입장을 정리한 것은 청문회와 교육부 장관 협의 등 절차를 모두 끝내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최장 80일이 소요되는 만큼, 자칫 혼선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진보 교육감의 결정에 대해 비토를 하는 위험을 감수한 데엔 여권 내에서조차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북이 고향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회 교육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상당수가 이번 전북교육청의 결정에 대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