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이 최근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화제를 일으켰지만, 사실 거대 정보기술(IT)기업 상당수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금융업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선 카카오ㆍ네이버ㆍ삼성 등이 진출한 간편결제 서비스(통칭 ‘페이’)가 익숙하다. 구글, 아마존 등도 소상공인에 광고비를 후불로 받는 형식으로 대출 부문에 진출한 상태다.
세계 중앙은행 간 협력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이 이 같은 대형 IT기업들의 금융진출이 가져올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BIS는 23일(현지시간) 발행한 연례 보고서에서 “대형 IT기업은 정보ㆍ거래 비용을 대폭 줄여 금융의 효율성을 개선한다”면서도 “이들이 급성장해 데이터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새로운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빅데이터ㆍ인공지능, 금융 포용 늘릴 것”
보고서는 우선 거대 IT 기업들이 전통의 금융사들과 대비되는 3가지 이점으로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 △이용자 네트워크 △전자상거래 등 다른 사업부문을 활용한 ‘범위의 경제’ 등을 꼽았다. 실제 기존 금융사는 알기 어려운 개인의 상거래, 관심사 정보 등을 활용하면 이용자의 신용도를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또 IT 기업의 금융서비스를 통해 기존에 금융 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개인ㆍ기업에 대한 ‘금융 포용성’도 강화된다고 평가했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은행 계좌가 없는 전세계 17억명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플랫폼, 독점 부작용 우려”
하지만 전세계 수십억명 회원을 거느린 페이스북 같은 ‘시장 지배적 플랫폼’이 금융권에 진출한다면 순식간에 시장을 지배하는 금융독점 기업으로 자라날 수 있다. BIS는 보고서에서 대형 IT기업이 독점적 지위에 오르면 시장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IT기업들은 현재 금융상품 판매 통로로서 기존 금융권과 협력하고 있지만 동시에 금융상품 제공자로서 변모하고 있다. IT기업들이 향후 자사 상품에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기존 금융권을 압도할 가능성도 있다. 또 방대한 수집 데이터를 활용해 가격 차별화를 시도하거나 되려 취약한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할 수도 있다.
실제 중국 알리바바의 ‘세서미 크레딧’은 그간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했던 이들도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게 했지만, 친정부 활동을 하는 이에겐 높은 신용점수와 각종 대출 혜택 등이 주어진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서구권으로부터 “빅 브라더의 재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도 딜레마… 통합적 규제 필요”
BIS에 따르면 현재 각국 정부의 대체적인 방침은 기존 금융사와 금융에 진출한 IT기업에게 ‘동일 활동, 동일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IT기업의 진출을 통해 기존 금융권의 혁신을 꾀하면서도 독점은 방지해야 하고, 데이터 독점을 막는 정보 공유를 확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도 보장해야 하는 등 각종 딜레마에 빠져 있다.
BIS는 “현재의 규제들은 도입 초기 단계여서 효과와 영향을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통합적이고 새로운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구글이나 애플 등 초대형 IT기업이 국경을 넘나드는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규제당국 간의 연대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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