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적발ㆍ처벌 기준이 강화되는 개정 도로교통법(윤창호법) 시행 첫 날인 25일. 시계바늘이 0시를 가리키기가 무섭게 서울 영등포경찰서 교통안전계 외근2팀 소속 경찰관 5명이 서울 영등포동 영등포공원 앞 편도 2차선 도로에 차선을 막고 음주 단속을 시작했다. 영등포역 인근 유흥가에서 술을 마신 뒤 서울 대림동이나 경기 시흥시 방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으로, 평소 유동인구가 많은 지점이었다.
경찰관들은 경광봉으로 차량을 막아선 뒤 음주감지기에 입김을 불게 했다. 운전자들은 경찰의 단속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음주감지기에 힘껏 숨을 불어넣었다. 버스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예외는 없었다. 이 곳을 지나던 한 택시 운전기사는 “오늘 0시를 기점으로 음주 단속이 더 강화된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휴학중인 군인이 만취 운전자에 치여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윤창호법’이 만들어졌고 이날 시행됐다. 음주운전 처벌수치(면허정지 0.05→0.03% 이상) 및 가중처벌 기준(3회→2회 위반)을 강화하고,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드디어 한국 사회에서도 음주 운전이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단속 시작 18분만에 무너졌다.
0시 18분쯤 하얀색 수입 승용차 한 대가 단속 현장에 들어섰다. 이 차량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 강모(37)씨가 입김을 불자 음주감지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경찰관들이 순식간에 차량을 에워쌌고 강씨는 인근 순찰차로 이동해 음주측정을 다시 받았다. 호흡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96%. 운전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과거 기준이었다면 면허 정지 수준이지만, 19분 전 시행된 윤창호법에 따라 강씨는 면허 취소 처분을 받게 됐다. 강씨는 “회사 회식으로 맥주 3잔을 마신 뒤 대리운전을 불렀지만 50분 동안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500m 정도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솔직히 윤창호가 누군지도 모른다”라며 “오늘은 괜찮겠지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라고 털어놨다. 강씨는 채혈 측정을 요구하며 경찰과 함께 인근 지정병원으로 이동했다. 1시간 30분쯤 뒤인 오전 1시 52분에는 125cc급 오토바이를 몰던 이모(29)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095%로 단속됐다. “전날 술을 마셨는데 왜 내가 취했다고 보는 것이냐”는 그의 항변에 단속 경찰관은 “어제 먹든 엊그제 먹든 술을 깬 상태에서 운전을 하셔야 한다”고 대답했다. 영등포경찰서 조영일 경위는 “대부분 음주 단속에 걸리면 일단 흥분부터 한다”며 “기존에는 술을 한 두잔 먹어도 훈방 조치 됐지만, 이제는 전부 단속될 것 같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에서도 운전자 2명이 술에 취한 채 운전하다 경찰의 단속 망에 걸려들었다. 0시 22분 청담동 영동대교 남단에서는 서모(37)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076%로 단속됐다. 회식 때 소주를 마셨다고 진술한 그의 차에는 동료 2명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어 오전 1시 39분 청담동 명품거리에서는 홍모(35)씨가 만취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110%)로 단속됐다.
영등포경찰서 교통안전계 이동현 경위는 “단속되면 억울하다는 분이 많은데, 음주를 조금 하면 운전해도 되고 많이 하면 운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일단 버려야 한다”며 “술을 한 잔만 먹어도 운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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