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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45도로 잘라낸 외벽에 삼각 창… 빛을 차단하고 빛을 들이다

입력
2019.06.26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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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집 공간 사람’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경기 파주시 붉은 벽돌집 

경기 파주시 서패동 주택단지에 들어선 붉은 벽돌집은 벽면을 사선으로 자른 듯 벌어진 틈새로 채광과 조망을 확보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경기 파주시 서패동 주택단지에 들어선 붉은 벽돌집은 벽면을 사선으로 자른 듯 벌어진 틈새로 채광과 조망을 확보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출퇴근 거리, 자녀 교육환경, 주변 편의시설, 부족한 여가시간과 경제적 능력… 직장인들은 집을 짓고 싶어도 지을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이 은퇴하고, 자녀가 독립한 이후로 꿈을 잠깐 접어둔다. 지난해 10월 경기 파주시 서패동에 생긴 2층짜리 붉은 벽돌집의 주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은 퇴직을 3년 앞둔 50대 공무원 부부가 노후를 위해 꿈을 펼친 공간이다. 올해 고3인 아들을 독립시키고 난 후에 부부는 서울 중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벽돌집으로 거처를 옮길 계획이다. 이미 완공된 벽돌집에서 틈틈이 정원을 가꾸고, 집 안에 음향시설을 들이는 등 제2의 인생을 즐길 준비에 한창이다.

경기 파주시 서패동에 들어선 붉은 벽돌집은 바깥에서 보면 마치 꽃봉오리처럼 작지만 힘이 있어 보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경기 파주시 서패동에 들어선 붉은 벽돌집은 바깥에서 보면 마치 꽃봉오리처럼 작지만 힘이 있어 보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작지만 힘 있는 집’ 

“강원도 산골에 파묻혀 살까도 생각해봤지만, 아직 그러기에는 젊은 나이 아닌가요. 은퇴 후에 지인들도 만나야 하고, 여가도 즐기고 싶어요. 서울과 가깝지만 툭 트인 전망도 있고, 시골 분위기도 나서 여기가 딱이다 싶었습니다.” 연고는 없지만 3년 전쯤 파주에 땅(400㎡)을 샀다. 덜컥 땅을 사고 건축주 부부는 마음에 드는 집을 짓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부부는 “은퇴 후 둘이 주로 생활할 계획이어서 크기는 작아도 상관없지만 나이 든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힘이 없어 보이는 건 싫었다”며 “주거로서의 기능을 갖추되 외적으로도 존재감이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마침 최규호ㆍ박증혜(큐제이아키텍처) 부부 건축가가 아버지를 위해 지은 경기 양평군의 집 한 채가 부부의 눈에 들어왔다. 건축주는 “집 외관을 포켓처럼 씌운 듯한 아늑하고 포근한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며 “우리가 짓고 싶었던 ‘작지만 힘 있는 집’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미 설계한 주택을 보고 건축가를 섭외했지만 건축주의 성향과 대지조건이 다른데 똑같은 주택을 지을 수는 없는 법. 최규호 건축가는 “집짓기는 옷으로 따지면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라며 “겉만 예쁜 집이 아니라 사는 사람에 맞춰 가장 살기 쾌적한 집이 좋은 집이다”라고 말했다.

대지를 확인한 건축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지 뒤편인 북쪽에는 이미 다른 주택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동쪽으로 출입구를 내야 했다. 풍경은 임진강이 훤히 보이는 서쪽이 가장 좋았다. 남쪽은 길 건너 다른 주택과 마주 보고 있었다. 집의 가장 기본적인 남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건축가는 일단 집의 가장 단순한 형태인 정육면체에서부터 시작했다. 창을 낸다면 풍경을 확보할 수 있는 서향과 빛을 들일 수 있는 남향이 적합했다. 문제는 전망을 위해 서향으로 창을 내면 빛이 들어오는 오후 4시 이후에는 눈이 부셔 앞을 볼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남향으로 창을 내면 하루 종일 강한 빛이 들어와 실내가 찜통이 되고 만다. 채광과 조망을 고려해 남쪽과 서쪽에 창을 내면 살기에 불편할 게 뻔했다.

칼로 자르듯 벽면을 사선으로 자른 듯 하지만 실제로는 벨기에산 벽돌 3만장을 하나하나 기울기에 맞춰 직접 공들여 쌓아 완성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칼로 자르듯 벽면을 사선으로 자른 듯 하지만 실제로는 벨기에산 벽돌 3만장을 하나하나 기울기에 맞춰 직접 공들여 쌓아 완성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고민을 거듭하다 정육면체의 두 면을 칼로 자르듯 사선으로 자르기로 했다. 컴퓨터 환경 소프트웨어로 계절별, 시간대별로 내부에 들어오는 빛의 양과 질을 분석해 여러 차례 가상공간(3D)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최적의 기울기를 찾아낸 것. 벽을 45도 기울기로 잘라 삼각형의 창을 냈다. 서향으로 창을 냈을 때 오후 4시 이후 빛을 차단하면서도 조망을 해치지 않았고, 남향도 마찬가지로 빛을 끌어들이지만, 오후에는 각도에 따라 빛이 차단된다. 사선으로 자르고 남은 벽면은 부부가 원했던, 집을 감싸 안은 듯한 포켓 형태가 됐다.

외벽은 붉게, 내벽은 회색으로 입힌 벽돌은 벨기에에서 맞춤으로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사선으로 잘린 벽면에 맞는 벽돌을 만들기 어려워 수작업으로 벽돌을 만드는 유럽에서 공수했다. 건축가가 의뢰한 기울기에 맞춰 손으로 틀을 만들어 구운 벽돌 3만장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지었다. 벽돌은 매끈하지 않고 조금씩 삐뚤다. “세월이 흐르면서 예쁘게 낡은 느낌이 들도록 벽돌집을 짓고 싶었다”고 한 부부의 취향에 오히려 잘 맞았다. 사선 벽돌집은 앞에서 보면 마치 꽃봉오리처럼 작지만 알찬 느낌을 준다.

6m가 넘는 천장을 따라 서쪽과 남쪽으로 뚫은 창으로 임진강이 시원하게 보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6m가 넘는 천장을 따라 서쪽과 남쪽으로 뚫은 창으로 임진강이 시원하게 보인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6m 천장고와 문 없는 방… 탁 트인 내부 

빛을 품은 듯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탁 트였다. 아파트 층고(2m)의 세 배 이상인, 6m가 넘는 높은 천장을 따라 이어지는 창으로 임진강 너머까지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사선으로 자른 벽은 집 아래 쪽에 새로 지은 건물을 커튼처럼 가려 준다. 높은 천장 덕에 공간은 단순하지만 깊은 개방감이 느껴진다. 내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조형미를 더했다. 1층은 건축 면적이 97.54㎡(29.5평)로 다른 전원주택에 비해 작다. 보통은 1층에 거실과 방을 두지만 집은 거실 겸 식당을 주요 공간으로 서재와 화장실, 창고 등이 있는 단순한 구조로 설계됐다. 소파나 서랍장 등 가구는 일부러 최소화했다. 의자와 식탁, 스피커, 책상이 전부다. 공간들은 문 없이 구획됐다. “아파트는 공간이 자잘하게 나눠져 있는데, 살아 보니 너무 답답하고, 거실에 앉아서 TV도 보다가, 청소도 했다가, 책도 봤다가 뭔가 집중이 잘 안 되고 산만해지더군요. 천장이 높고,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독서, 음악감상 등 어떤 활동을 길게 집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건축주)

내부 벽면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조형미를 더했다. 2층 곳곳에 창을 내어 환기를 원활하게 하면서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내부 벽면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조형미를 더했다. 2층 곳곳에 창을 내어 환기를 원활하게 하면서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2층에는 방 2개와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각 방은 별도의 테라스를 내어 전망을 확보했다. 방 안쪽에도 긴 내부 창을 만들어 각 방에서도 1층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여기에도 쾌적한 집 안 환경을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안팎으로 낸 창들은 답답함을 줄여 주기도 하지만 여름에 더워진 공기가 올라오면 환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1층에서 길게 연결되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2층 창을 통해 여러 각도로 스며들어 빛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듯이 느껴지죠.”(최규호 건축가)

내부 테라스 창을 통해 정원과 바로 이어진다. 벽돌 벽면이 집을 포켓처럼 감싸 아늑한 느낌을 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내부 테라스 창을 통해 정원과 바로 이어진다. 벽돌 벽면이 집을 포켓처럼 감싸 아늑한 느낌을 준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부부는 이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구와 예술작품으로 집 안을 채웠지만 앞으로는 자연으로 집을 채우고 싶다. 창을 열면 바로 연결되는 정원에는 보리수나무, 모과나무, 단풍나무 등을 심었고, 집 안은 춤추듯 드리워지는 빛 그림자에 공간을 내어 줬다. “TV도 두고 미술 작품도 벽에 걸려고 했는데, TV 볼 일도 없고, 시간마다 노출 콘크리트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재미있어 그림도 걸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나무가 자라는 걸 보고, 따뜻한 햇볕을 쬐며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파주=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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