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ㆍ4호선이 지나는 서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웬 근대 건축물이 버티고 서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뒤섞인 이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 안내방송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영화 ‘암살’에서 의열단원들이 열차에서 내려 잠입하던 장면 속 그곳, 바로 ‘문화역서울 284’다.
“이곳은 군산 세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3대 근대건축물로 꼽힙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있을 거예요.”
27일 문화역서울 284의 공간 투어 해설사인 김나현씨는 “특히 중앙홀은 영화 암살과 밀정 등에서 배경으로 나왔다”며 “실제로 의열단원이 경성역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첩보에 순사를 3배 증원해 감시한다는 기사(매일신보 1927년 1월 30일자)가 있다”고 설명했다.
1900년에는 ‘남대문정거장’이 있던 자리다. 그후 경의선과 경부선이 뚫리면서 1925년 지금과 같은 모습의 역사가 들어섰다.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던 서울역 구역사다. 2003년 바로 옆에 신역사가 지어지면서 제 용도를 잃었다. 보강 공사를 거쳐 2011년 문화역서울 284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게 이름에도 반영됐다.
문화역서울 284는 옛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되살려놨다. 중앙홀 오른쪽에 있는 넓은 공간은 3등 대합실이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인만 머무르던 곳이다. 남성 승객만 사용할 수 있었던 1ㆍ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도 재현돼있다. 대리석 벽난로와 큰 거울, 고급 장식 벽지로 마감된 귀빈실의 흔적도 남아있다. 김씨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슬픈 역사가 담긴 곳이다”고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그릴’과 화장실, 이발소가 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릴은 당시 고위 관료와 귀족들이 찾던 고급식당이었다. 해방 뒤 톱배우들의 발길이 잦았던 첨단 유행의 공간이었지만 인근에 고급 호텔이 들어서면서 1988년 중반 문을 닫았다.
기차역이었던 문화역서울 284는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공간을 내주면서 연중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다음달 7일까지는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한 예술가 50여명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문화역서울 284는 이곳의 건축적ㆍ역사적ㆍ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해설사가 직접 소개해주는 공간투어 프로그램도 무료로 진행한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와 4시에 시작된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자세한 내용은 문화역서울 284 홈페이지(seoul284.org)에서 찾아보면 된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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