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 적고 초과근로 수당 많은
업종 노동자들은 어려움 호소
“임금체계 개편ㆍ유연한 근무 등
업무 특성 맞는 정책 고민해야”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는 한성근(가명ㆍ48)씨는 당장 다음달부터 월급이 줄어들까 걱정이 많다. 1년간 유예됐던 노선버스업종(300인 이상)에서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하루 17시간씩 일하고 이튿날 쉬는 격일제 대신 하루 9시간씩 주 5일 일하는 1일2교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기본급의 1.5배인 각종 수당이 줄어든다. 현재 한달 평균 14일 일하는 한씨의 월급통장에 찍히는 돈은 약 387만원인데, 이 중 연장ㆍ야간근로수당 비중이 40% 가까이 된다. 교대제가 바뀌면 하루 종일 고되게 운전하진 않아도 되지만 근로시간 감소로 손에 쥐는 돈이 한 달에 약 60만원은 줄어들게 생겼다. 한씨는 “한 푼이 아쉬운데 15%나 월급이 줄면 어쩌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금 보전을 위해 노사가 막판 조율 중이지만 수익성이 높은 업종도 아니라 전액 보전은 쉽지 않아 한씨의 수심(愁心)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7월 1일이면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1년이 된다. 장시간 근로국가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던 우리나라는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1,986시간)이 집계를 시작한 2008년(5인 이상 사업장 기준) 이래 처음으로 2,000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현재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만 7월부터는 300인 이상 특례제외업종(노선버스ㆍ방송사 등 21개), 내년 1월엔 50~299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된다. 주 52시간제의 확대는 ‘장시간 근로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시킬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그늘도 짙다. 특히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중소 사업장ㆍ취약 노동자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임금이 줄어들거나 추가근로를 하고도 수당을 못받는 ‘불법 추가근로’를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 사업인 아이돌보미 일을 해온 박소운(가명ㆍ48)씨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감소로 임금이 반토막 났다. 박씨는 지난 6년 동안 하루 10~12시간 1주일에 5일씩 아이 한 명을 돌보는 ‘종일제 근무’를 해왔지만, 지난 3월부터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법원이 아이돌보미를 ‘근로자’로 인정하면서, 여가부가 올해 근로기준법에 맞게 근무체계를 개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이 등원 전과 하원 후에만 2~3시간씩 맡는 ‘시간제 근무’로 박씨의 근무체계가 바꿨다. 박씨는 “시급(8,350원)이 지난해(7,530원)보다 10.9%나 올랐는데도 한 달에 버는 돈은 절반이 됐다”며 “출퇴근을 하루 두 번씩 하면서 오가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다른 아이를 더 맡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달에 180만원 이상 벌었던 박씨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금은 100만원 정도만 손에 쥔다.
24시간 근무자가 필요한 국가ㆍ지방직 청원경찰직들의 월급봉투도 얇아졌다. 이들은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해 임용되지만 근로시간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다. 한 지방도청에서 일하는 강성민(가명ㆍ34)씨는 “주 52시간 이상 근무가 일상적일 때는 월 90만원 가량 초과근로ㆍ야간수당 등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 수당이 5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인력 보충이 없어, 기존 인력을 쪼개 교대 근무조를 3개조에서 4개조로 늘리다 보니 화장실 가기도 힘들 정도로 근무 강도도 세졌다.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기시간 역시 늘었다고 강씨는 하소연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3,526개소)에서 주 52시간제가 안착했다는 정부의 평가와 달리 현장에서는 이처럼 업무 특성에 맞는 정책 부재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생산직 노동자 등 대개 기본급이 적고 초과근로수당이 컸던 임금 구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2교대 공장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한 30대 노동자가 “한 달에 두 번 쉬고 세전(稅前) 약 400만원을 받는데 이는 야간ㆍ휴일ㆍ특근수당이 모두 포함된 돈으로, 52시간이 적용되면 300만원도 받기 어렵다”며 시급제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추정한 지난해 상용직의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 감소분은 각각 월 2.5시간, 4만3,820원이다. 연구원은 앞으로 주 52시간제가 확대 적용되기 시작하면 초과근로시간이 더 줄어들면서 급여 감소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보완책으로 제시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곽상욱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부장은 “300인 이상 사업장보다는 앞으로 주 52시간제가 도입될 300인 미만 사업장이 문제”라며 “추가 고용을 할 만한 상황이 안 되는 곳도 많다 보니 ‘휴게시간 쪼개기’ 등 편법을 벌써부터 고민하는 곳들이 있다”고 전했다. 올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는 300인 이상 특례제외업종은 1,047곳이고, 내년 1월 적용되는 50~299인 이하 사업장은 2만7,000곳이다.
‘휴식이 있는 삶’을 위해 주당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됐지만 모든 근로자들이 선뜻 환호하기 어려운 이유는 일을 덜 할수록 월급봉투가 얇아지는 현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도입의 방향은 옳았지만,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 임금구조 개혁 등으로 노사 양측의 불이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우리나라는 공무원도 각종 수당 비중이 40%에 이를 정도로 기본급 수준이 낮아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초과근로가 일상화된 것”이라며 “초과근로를 줄이고 기본급 비중을 늘리되 연공급이 아닌 직무와 역량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을 줄여나가는 방향성 자체는 맞았지만 52시간제처럼 경직적 방법으로 시행한 게 문제였다”며 “비용이 늘어난 기업과 소득이 줄어드는 근로자가 불만을 갖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연한 형태의 근무 패턴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이지만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맞추기는 쉽지 않다”며 “일률적 근로시간 규제가 어렵다면 유급 병가제도 도입 등 전체 휴식 제도 확보와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효신 노무사(소나무법률사무소)는 “주로 환경미화원이나 대형 관리업체 소속 청소원, 장애인 활동보조원 등이 주 52시간 때문에 우려가 된다는 상담을 한다”며 “이들도 임금 걱정 없이 일ㆍ가정 양립을 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제도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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