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이세돌 9단측 ”상금 공제액 반환 거부는 재산권 침탈” 주장…기원에 내용증명 발송
한국기원 “다음달 이사회에서 관련 사안 논의하고 조만간 접점 찾을 것”
기사들의 상금 공제는 바둑계 근간인 프로기사회 유지의 주요 재원으로 포기 어려워
50년 넘게 선배들의 희생 위에 성장한 이세돌 9단측 요구는 이기적이란 시각도
한국 바둑의 간판스타인 이세돌(36) 9단과 한국기원이 상금 공제를 놓고 법정 충돌 조짐이다. 2016년 이 사안 등과 관련, 프로기사회 탈퇴 선언으로 주목됐던 이세돌 9단이 ‘뜨거운 감자’를 재차 수면 위에 부각시킨 형국이다. 특히 이세돌 9단측에선 “부당한 상금 공제는 재산권 침탈이나 다름없다”며 최악의 경우, 소송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확인되면서 법정 공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9일 한국기원 등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최근 3년 동안 각종 기전 우승과 함께 자동으로 공제됐던 자신의 상금 공제 관련 내용증명을 지난 달 초 기원측에 보냈다. 3년 전, 프로기사회를 탈퇴한 이후 인위적으로 공제해 간 이세돌 9단의 상금을 되돌려 달라는 게 내용증명의 핵심이다.
현재 400여명이 가입된 프로기사회 정관엔 소속 기사들이 국내 기전에서 올린 수입(매판 대국료 및 우승상금 등 포함)의 5%를 회비로 내야 한다. 이 정관 조항은 1967년 프로기사회 출범 때부터 유지돼 왔다. 이렇게 걷힌 회비는 은퇴 기사에게 지급된 위로금을 포함한 회원 복지와 바둑 보급활동 등에 사용된다. 하지만 2016년 당시 이세돌 9단과 친형인 이상훈(44) 9단은 이 조항 등에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프로기사회에 탈퇴서까지 제출했다. 3년 전, 프로기사회에서 탈퇴한 만큼 그 동안 회비 명목으로 5%씩 공제해 갔던 상금을 돌려 받아야 한다는 게 이세돌 9단측의 입장이다. 지난 3년간 프로기사회 회비 명분을 내세워 공제된 이세돌 9단의 누적 상금 규모는 약 3,000만원대로 알려진 가운데 현재 한국기원에서 보관 중이다.
◇이세돌 9단측 “한국기원에서 남의 재산권 침탈하고 있어”…상금 공제액 돌려줘야
이세돌 9단측은 자신의 상금 공제를 두고 이번엔 법정공방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이세돌 9단측이 법무법인까지 선임해 한국기원에 내용증명을 보낸 것도 이런 수순에서다. 이세돌 9단의 매니저인 이상훈 9단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한국기원에서 개인에게 돌아갈 상금을 틀어쥐고 있는 지 모르겠다”며 “이것은 명백한 개인의 재산권 침탈 행위다”고 못박았다. 3년 전 이미 불분명한 성격의 프로기사회에서 탈퇴한 마당에, 이세돌 9단의 상금을 회비처럼 강제로 떼어간 것도 이해할 순 없지만 공제된 상금을 한국기원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부분도 납득하기 어렵단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에선 “본의 아니게 프로기사회에 전달됐어야 할 이세돌 9단의 상금 공제액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협찬사로부터 지급된 대국료 등의 국내외 기전 상금은 한국기원에서 취합한 이후 회비 등을 공제하고 각 선수와 프로기사회에 전달되고 있다. 하지만 이세돌 9단 상금 공제액의 경우엔, 3년 전 제출된 이 9단의 탈퇴서를 수리하지 않고 있는 프로기사회에서 한국기원측에 임시 보관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한국기원에선 탈퇴 여부를 놓고 상반된 시각인 이세돌 9단과 프로기사회의 관계 정리에 따라 이 9단 상금 공제액도 지급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로기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 또한 여전했다. 이상훈 9단은 “프로에 입단하면 자동적으로 프로기사회에 가입이 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우리나라가 무슨 공산국가도 아닌데,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가입된 친목단체 성격의 프로기사회에서 탈퇴마저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프로기사회 정관엔 △회원의 품위 향상 △한국기원 운영 참여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회원의 복지후생 향상 △회원의 일자리 창출 △회원의 권리 증진 등이 설립 목적으로 규정돼 있다.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의 무책임한 태도 역시 불만이다. 이상훈 9단은 “3년 전, 프로기사회에서 동생과 함께 탈퇴한 이후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에 그 동안 공제시킨 이세돌 9단의 상금 반환 요청을 여러 차례에 걸쳐 했다”며 “그 때마다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에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확실한 답변을 회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한국기원은 사실상 프로기사회 편에서 불공정하게 이번 사안을 처리하고 있다는 게 이세돌 9단측의 판단이다. 이상훈 9단은 “한국기원에선 ‘중재’란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3년 전, 프로기사회에서 탈퇴한 이후 이 사안으로 한국기원 주선으로 프로기사회와 논의를 해 본 기억이 단 한번도 없었고 한국기원에서 먼저 연락조차 해 본 적도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특히 인내심에 한계에 달했다는 설명과 함께 법적인 대응 방침도 분명히 내비쳤다. 이상훈 9단은 이어 “한국기원 신임 총재도 선임된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이번에도 분명한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원-프로기사회 “이번엔 어떤 형태로든 해결”…하지만 오랜 관행에 적지 않은 부담도
이에 대해 한국기원과 프로기사회측에선 어떤 형태로든 이세돌 9단의 상금 공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삼(45)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이세돌 9단과 관련된 사안은 임채정 신임 총재도 알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논의를 거쳐서 좋은 결론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12일에 개최될 한국기원 이사회에선 이번 이세돌 9단과 얽힌 내용이 안건으로 상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손근기(32) 프로기사회장도 “이세돌 9단과 연관된 문제는 이전 프로기사회에서부터 떠밀려 온 숙제이다”며 “언제까지 마냥 뒤로 미룰 수도 없고 이번만큼은 한국기원과 잘 상의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측의 상금 공제 환원 문제와 관련된 해법 찾기가 쉬운 건 아니다. 당장, 이세돌 9단의 탈퇴서 제출은 50년 넘게 이어온 프로기사회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프로기사가 선수 생활 도중, 스스로 프로기사회에 사퇴서를 제출했던 사례는 없다. 프로기사회 사퇴는 현역 은퇴를 의미했던 게 전례다.
특히 이세돌 9단의 상금 공제가 프로기사회 운영과 직결되고 있단 점에서 민감하다. 각종 기전에서 획득한 기사들의 수입 가운데 공제시켜 쌓아둔 5% 적립금은 프로기사회 운영의 주요 재원으로 사용돼왔다. 결국, 프로기사회의 재정의 경우엔 많은 상금을 획득한 상위권 기사일수록 기여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프로기사회 소속의 한 중견 기사는 “사실 이 문제풀이가 진짜 어려운 건 프로기사회 운영에 필요한 주요 재원이 이세돌 9단처럼 성적을 낸 기사들의 5% 상금 공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며 “만약 이세돌 9단의 요구대로 프로기사회 탈퇴를 용인하게 된다면 지금 상위권 기사들 중에서도 프로기사회를 나가겠다는 기사들도 잇따라 나올 것”이라고 털어놨다. 프로기사회에선 기사들로부터 걷힌 재정 수입에 대한 세금도 지출하고 있다.
이세돌 9단측의 상금 공제 반환 요구가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없단 방향으로 형성된 프로바둑 기사들의 묵직한 분위기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다른 중견 프로바둑기사는 “오늘날 한국 바둑계는 한국기원보다 먼저 설립된 프로기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프로기사회 소속인 조훈현 9단이나 이창호 9단 등을 포함해 대선배들의 희생(상금 공제)이 있었기에 이세돌 9단도 지금 활동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대선배들이 프로기사회에 내놓았던 상금 공제의 유·무형적인 혜택을 누렸던 이세돌 9단이 이제 와서 다른 길로 가겠다는 건 도리에 맞지 않다는 얘기였다.
일부에선 어렵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바둑계에 이번 이세돌 9단의 파동이 또 다른 악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역력하다. 한 시니어 프로바둑기사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기원 신임 총재 선임을 계기로 그 동안 미뤄졌던 KB바둑리그 개막도 임박하면서 바둑계가 제자리에 찾아가는 모습이었는데 이번 사안이 불거져서 안타깝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이세돌 9단 문제는 깨끗하게 털고 가는 게 순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기원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이 2016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획득한 기전 상금 규모만 살펴보면 2016년 8억107만원(랭킹 1위), 2017년 1억8,166만원(5위), 2018년 3억116만원(5위), 2019년 현재 2,617만원 등으로 집계됐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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