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만을 마주하고 있는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최대 항구도시인 동시에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던 조용한 관광ㆍ휴양도시.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캄보디아지만 훈 센 총리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중국에 밀착하면서 수년 전부터 그 분위기가 180도 바뀐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남중국해에서의 미국 견제를 피해 해양으로 세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지난 28일 찾은 시아누크빌은 온 도시가 공사장이었다.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 공사장이 아닌 곳을 찾기는 힘들었다. 시내 웬만한 길은 공사 차량들이 다니면서 망가져 움푹움푹 패었고,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스카이라인은 공사장에 세워진 크레인타워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현지 안내를 맡은 소테라(36)씨는 “건설 현장 대부분이 중국 자본에 의한 것”이라며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내 중국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크메르어-영어로 써진 간판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긴 했지만, 중국어 간판들이 거리를 압도했다. 소테라씨는 “공사장도 중국, 그 현장 인부, 자재도 중국, 그들이 자는 곳도, 먹고 마시고 노는 곳도 모두 중국 자본 업체들”이라며 “그들이 우리한테 일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외 도움 주는 것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지에선 시아누크빌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 규모를 10만명으로 추산했다. 시아누크빌 현지인 인구는 15만명이다.
중국인들이 몰려오면서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불편과 불만 수준은 상당했다. 상수도 공급이 달려 도시 전체가 제한급수를 실시하는가 하면 시내 주택 월세 시세는 2017년 50달러 수준에서 현재 200~300달러 수준으로, 3배 이상 치솟았다.
현지에 진출한 한 싱가포르 부동산개발 업체 관계자는 “2015년 ㎡당 100달러 수준이던 토지 가격이 현재 2,700달러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며 “집과 땅을 팔고 밖으로 나간 현지인들이 시내로 다시 들어오기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자본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이 밀려나는 상황), 즉 ‘차이나피케이션(중국을 뜻하는 차이나와 젠트리피케이션의 합성어)’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현지에서 만난 교민 사업가는 “재래시장 상가 주인들도 절반이 중국인일 정도”라며 “한국, 일본인들이 비교하면서 재는 동안 중국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쓸어 담고 있다”고 말했다.
시아누크빌 밖으로 밀려 나는 이들은 현지인만이 아니었다. 라타낙 해변 인근에 자리 잡은 한 호텔 카지노 주인 Y(56ㆍ이스라엘)씨는 “2004년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최근 중국인 고객 급증으로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면서도 “그 때문에 러시아, 유럽인들의 발길이 끊긴 것은 걱정된다”고 말했다. 1,000명가량의 러시아인들이 생활인프라가 갖춰진 시아누크빌 시내에서 지냈지만, 최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국의 시아누크빌 이주’를 이끌고 있는 것은 중국 카지노. 현지 카지노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6년 당시 13개에 불과하던 시아누크빌 카지노 수는 현재 110개 이상”이라며 “카지노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호텔이 있어야 하는 만큼 호텔, 리조트 건설이 붐의 중심이고, 이를 보완하는 중국인 시설들도 붐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곳곳에서 중국인들을 위한 대형 마트와 유흥 주점, 편의 시설물도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 22일 붕괴해 28명의 사망자를 낸 신축건물 공사장도 중국인이 짓던 사우나 시설이다. 현지 관계자는 “당초 3층 규모의 사우나로 허가를 받았지만, 2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8층으로 올리려다 난 사고였다”며 “현지인들을 무시하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도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사고 현장에서는 숨진 28명에 대한 위령제가 열리고 있었다. 구조 작업에 나섰던 현지 헌병대의 낌 안 중령은 “훈 센 총리가 건축 현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며 “새 시장이 부임하면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훈 센 총리가 중국자본을 겨냥한 조사를 지시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지만, 현지에서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전수조사 행정력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중국은 건드릴 수 없는 수준의 존재”가 됐다는 게 이유다.
시아누크빌(캄보디아)=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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