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 고위관료가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것으로 취급하라고 내부 직원들에게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화웨이에 대해 “미국 기업들의 부품 공급을 허락하겠다”고 밝힌 것과 상반되는 대목이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수출집행실의 존 선더먼 부실장은 지난 1일 기업들이 화웨이에 대한 판매 허가를 요청하면 ‘화웨이는 여전히 제재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BIS는 미국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를 원할 경우 허가를 내주는 역할을 한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월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를 수출 제한 목록에 올렸다.
선더먼 부실장은 구체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판매 허가 요청이 온다면 블랙리스트 기업에 적용하는 ‘거부 추정(presumption of denial)’에 따라야 한다고 적었다. 거부 추정이란 거래 허가 여부를 결정 할 때 ‘거부’를 기본원칙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실제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대한 부품 공급 허가를 BIS에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승인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미중 정상회담 직후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많은 물건을 팔고 있어 거래를 계속해도 상관없다고 동의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대(對)화웨이 전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선더먼 부실장의 이메일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집행실 직원들이 받은 유일한 지침이라고 전했다. 로이터는 또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에 따라 집행실 직원들에게 추가 지침을 내놓을지, 그것이 허가 취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이번 이메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완화 약속이 ‘립 서비스’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 역시 전날 CNBC방송에 출연해 "기본적으로 우리가 한 것은 화웨이에 칩(반도체) 판매를 허용한 것”이라며 "미국 내에서 5G(5세대)와 관련한 화웨이에 대한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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