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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게임중독 진단ㆍ치료, ‘게임 죽이기’로 보는 게 비상식”

입력
2019.07.04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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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ㆍ전 국회의원

 알코올중독 질병이지만 술 누구나 즐겨 

 게임중독 질병 규정도 게임금지는 아냐 

 치유체계 갖추는 게 게임산업에도 도움 

 문체부까지 나서 WHO 비토하는 건 과잉 

 4차 산업혁명 대비 게임산업 지원 필요 

 산업지원과 보건정책적 접근 병행돼야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에 따른 사회적 논란에 대해 장인철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재에 따른 사회적 논란에 대해 장인철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대한 정부 입장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국민건강을 위해 건보재정의 부담까지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식이라면,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한 WHO의 결정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한 접근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 내에는 WHO 결정을 수용하려는 보건복지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부터 게임중독 질병 등재를 비토하는 기류가 흐르는 양상이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게임업계의 반발이 강하다 해도, 문체부까지 WHO에 공식 이의 제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 없다.

그 강력한 힘이 진작부터 게임산업에 호의적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후보 시절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WHO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대통령의 침묵이 은근히 WHO에 대한 비토 분위기에 힘을 실어주면서 관련 사회적 논의를 진행키로 한 민관협의체는 구성조차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는 오히려 셧다운제 완화 및 게임 결제한도 폐지 등 게임산업 지원책을 발표했다.

게임산업 지원도 좋지만, 국민건강과 관련한 선의의 결정과 권고 사안을 이렇게 어물쩍 넘기는 건 옳지 않다. 보다 진지한 논의를 위해, 2013년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4대 중독법’을 추진했던 신의진 연세대 교수와 WHO 결정의 의미, 최근의 논란 재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의학 전문가로서나 상식적으로 볼 때, 게임이나 ‘e-스포츠’를 하는 행위 자체를 어떻게 보나.

“그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뇌에 크게 문제도 없고, 즐길 수 있는 오락이라 생각한다. 술이나 포커처럼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즐긴다면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 않겠나. ‘e-스포츠’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특별한 거부감은 없다. 근육을 쓰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두뇌도 신체이고, 스포츠의 핵심인 경쟁요소까지 있다. 재미 있는 스포츠라고 할 만 하다고 본다.”

-2013년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처럼 규정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개정안(4대 중독법)’을 대표발의 했다. 제대로 논의조차 못되고 폐기됐는데, 어떤 취지였고, 폐기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게임을 특별히 염두에 둔 법안은 아니었다. 당시 황우여 대표가 대표연설에서 ‘4대 중독법’이라는 표현을 써서 오히려 놀랐다. 나로서는 특정 장애를 중독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보다는 중독현상에 대한 사회적 관리와 치료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자는 데 초점을 뒀다.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중독 담당 업무가 각 부처별로 나뉘어 있었다. 도박 중독은 문체부, 술과 담배 중독은 보건복지부, 게임 중독은 당시 문체부도 했지만, 청소년들이 한다고 여성가족부가 담당했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예방과 치료를 하려면 전문지식이 들어가야 하는데 각 부처가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쭈르륵 나눠 가진 것이다. 누가 진단하고 공존질환은 누가 치료하냐, 병원하고는 연결이 안 되어 있느냐 그렇게 물었더니 다들 우물쭈물했다.

부서별로 흩어져 있는 걸 총리실로 가져와 ‘중독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5년에 한 번씩 중독이 몇 퍼센트가 되는지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한 걸 가지고 발표하고, 그에 맞춰 예방하는 예산을 만들고 체계적 치료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취지였고, 그 중에 게임이 들어간 거였다. 하지만 그 때도 게임업계 등의 반발이 거세자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못한 채 폐기된 거다.”

-국가적 대처가 필요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중독현상이 심각하다고 보나.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많은 나라다.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하나는 공격성이다. 공격성이 밖으로 향하면 강력범죄가 되고, 안을 향하면 자해 내지는 극단적 선택이 된다. 다른 하나가 중독이다. 쾌락 중추를 자극해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우리나라 같은 사회에서는 공격성과 중독을 공중보건 차원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한 것의 공중보건 차원의 의미를 평가한다면.

“게임과 관련해 심각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사회가 나서서 의학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게임중독 때문에 장애가 나타났는지, 장애 때문에 게임에 중독되게 됐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별로 없다고 본다. 중요한 건 나타난 장애를 어떤 식으로든 진단하고 치유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공중보건이 전염병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듯, 그런 심각한 건강문제가 나타나고 있고 개인적으로 거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우니, 공중보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전 세계 학자들이 그런 현상(게임중독)이 있다고 인정한 거다.”

-게임업계 뿐 아니라, 문체부까지 나서서 등재 과정과 근거가 비과학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신의학에서 임상적 측면은 행동적인 측면을 가지고 진단한다. 뇌에 있는 신경의학적 문제를 규명하고 싶어도 현대의학으로는 더 못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문제를 방치할 순 없는 것이고, 그래서 해석이 안 되는 걸 남겨 두더라도 진단했을 때 근거가 더 많다면 일단 진단할 수 있는 게 정신의학에서의 임상과학이다. 이번에 WHO가 제시한 게임 이용 장애 진단기준을 보면 첫 번째 통제력 상실이 있다. 두 번째가 일상생활에서 게임이 우선이 되는 게 있다. 세 번째 게임이 자기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더라도 멈출 수 없는 게 있다. 그 세 가지 기준이 임상과학에서는 충분히 과학적이라고 할 만하다고 나는 본다. 임상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없이 물리학 풀듯이 과학을 주장하는 건 자칫하면 나라 망신밖에 안 된다.”

-정신의학자로서 국내에서 게임중독 현상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는가.

“외래 진료를 하다 보면 게임 하다가 학교에 안 가서 부모가 뭐라 했더니 먹던 라면을 집어 던진 애도 있다. 엄마가 게임을 못 하게 컴퓨터 다운시켜 놓으니까 야구방망이로 엄마를 때린 아이도 있었다. 문도 다 때려 부쉈다. 이 정도 되면 병원에 온다. 그런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있나. 그걸 장애 상태로 안 보고 어떻게 보자는 건지. 게임업계에서 한 번이라도 게임을 매개로 하여 엄마를 때리는 아이들에 대해 책임을 진 적이 있나. 의료인으로서는 그런 아이들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상황이 이런데도 임상통계조차 없다. 질병코드 자체가 없으니 관련 장애의 빈도나 치료결과가 정리되지 않고, 공유도 안 된다. 지금은 게임중독으로 병원에 오더라도 공존질환인 우울증이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분류될 뿐이다. 그러니 질병코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5년 질병코드 국내 도입 및 적용을 위한 민관협의회가 구성 단계부터 부처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한다면.

“극단적 주장을 펴는 분들의 협의회 배제 문제로 시끄럽다고 한다. 나도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아닐까(웃음). 격한 목소리 내는 분들은 제외하고 합리적인 분들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관협의회 자체도 보건복지부가 하겠다는 걸 문체부가 비틀어놓지 않았나. 이게 더 참담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유야 어떻든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인데 사회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지 갈등을 더 벌릴 수가 있나. 이낙연 총리도 나섰다지만, 어정쩡한 스탠스에 그쳤다고 한다. 산업적 측면의 지원은 지원이고, 게임중독 질병코드 적용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좀 더 명확한 정책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본다.”

-정부는 최근 게임 셧다운제와 결제 한도에 대한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학부모, 의료계는 게임중독이나 사실상 도박과 다름없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부작용을 제쳐놓고 정부가 규제부터 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게임산업 지원은 필요하고 육성될 가치가 크다고 본다. 온라인게임에서 가상증강현실로 진화하면서 수많은 제작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그 노하우는 산업 전 부문에 걸쳐 긍정적 기능을 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부가 게임 부작용을 외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원책만 가동하니까 정부의 게임산업 지원책에 대한 신뢰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게임중독에 대한 진단과 치유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장기적으로 게임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당장 눈 앞의 이해만 따져 일을 그르치는 것 같아 아쉽다.”

-질병코드 적용 외에 게임중독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가장 바람직한 건 게임 말고도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다른 선택이 많아지는 것이다. 체육시설 증설도 좋고, 평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동아리활동도 많아지는 게 바람직하다. 게임업계에서 청소년 활동 지원한다고 100억원 기금 모아놓고 절반을 게임 홍보에 써버렸다. 정부는 물론, 정부 지원을 받는 게임업계도 그만큼 청소년들의 다양한 스포츠 지원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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