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한일전 승리엔 집착하면서 對日 기술의존도 못 줄여
日, 합의 어기는 한국 불신… 말 안 바꾸는 中을 더 신뢰”
라종일(79) 전 주일 한국대사가 5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착수로 심각해진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 분쟁과 관련해 “당분간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말고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며 미국의 중재가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게 지금으로선 현명한 대응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제1차장과 주 영국 대사,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지낸 라 전 대사는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첫 주일 대사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 첫 한류 열풍을 몰고 온 2004년 3월 부임, 2007년 3월까지 3년간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했다.
이날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만난 라 전 대사는 “아직은 한일 정상 간 회담이 성사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감정의 골이 깊고 해결해야 할 기술적ㆍ법적 문제들이 많아 지금 정상끼리 만나면 수장 간 결투로 국가 운명을 갈랐던 중세로 돌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대일 우월감에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쓴소리도 했다. “일본에 소재ㆍ부품 등을 의존해선 안 된다는 반성이 나온 게 이미 반세기 전”이라며 “‘독도는 우리땅’이라면서도 실제로는 일본에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엄청나게 의존했고, 축구 경기 승리 등에 집착하면서 기술의존도 축소 같은 근본적 문제 해결을 등한시했다”고 개탄했다.
_대사 재임 당시 일본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을 것 같다.
“그때는 대중(大衆) 차원에서 관계가 좋았다. 참의원(상원) 선거(21일)를 앞두고 아베 총리가 경제 보복을 터뜨린 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현재 일본인 상당수의 대한 정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2004년 부임 당시 일본에서는 ‘욘사마’ 배용준씨 인기가 대단했다. 종교를 하나 시작해 교주가 돼도 될 정도였다. 2001년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를 기리는 영화도 나왔다. 제목이 ‘당신을 잊지 않는다’다. 천황 부부가 이수현씨 부모와 우리 부부를 초대해 다과를 대접한 일도 있었다. 우리는 전범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천황은 일본에서 가장 리버럴하고 친한적이다. 천황을 자꾸 거론하는 건 일본 국민 정서를 상당히 거스르는 일이다. 하지만 야스쿠니 문제 때문에 임기 막바지에는 한일 사이가 나빠졌다.”
대사 시절 일화도 라 전 대사는 들려줬는데 그의 소개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한국을 멀리하려 한 건 아니었다. 라 전 대사 임기 마지막 해인 2006년 당시 관방장관이던 아베 총리에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악화한 한일 정상 간 관계를 회복시켜 보겠다는 의욕이 강했다고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 라 전 대사에게 취임한 뒤 맨 처음 가고 싶은 곳이 서울이라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일정이 맞지 않는 바람에 결국 아베 총리는 베이징에 먼저 가고 말았다.
_그런 아베 총리가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한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내놨다.
“도쿄 부임 첫해 가장 먼저 추진한 게 비자 면제였다. 일본은 싫어했다.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정치권이 도와줬다. 조약을 맺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고야 박람회 때 방문객을 유치하려고 취한 잠정 조치 형태였다. 그걸 지금까지 무한정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특별한 관계니까 그걸 연장해 온 것이다.”
_왜 그렇게 잘해준 건가.
“일본은 나름대로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듯하다. 동북아시아 지역에 자국과 같은 체제,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국가가 버텨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1980년 이후 한국에 민주화가 정착되고 정권이 교체되자 일본의 기대감도 커졌던 것 같다. 한국이 이 지역에서 튼튼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게 일본 외교 당국자들의 얘기였다. 중국이 부상했고 북한 위협도 여전하다. 특히 북한에게는 일본의 피해의식이 크다. 어린 소녀인 요코다 메구미(납치 당시 13세) 납치 사건이 일본 국민 정서를 크게 자극했다. 얼마나 깔보면 마음대로 잡아가냐는 거였다.”
_금수(禁輸) 조치는 일본 기업에게도 피해를 준다.
“여러 모로 평가하고 한 것 같다. 새 수출선을 찾아야 하고, 연쇄적으로 미국과 중국에도 타격을 준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도 했지만 한국도 이제 힘이 없는 나라가 아니고, 한미일 안보 협력 이완을 걱정하는 워싱턴과의 관계도 있다.”
_일본이 원하는 게 뭘까.
“무리수인 줄 알면서도 일본이 그러는 건 한국과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인 것 같다. 일본이 볼 때 한국은 합의한 뒤에 자꾸 어긴다. 차라리 말을 바꾸지 않는 중국이 더 신뢰할 만하다는 게 일본 생각이다. 또 하나가 징용 피해 배상 문제다. 우리가 보면 배상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조약을 체결했고 이미 노무현 대통령 때 징용 피해자들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해 마무리된 문제다. 그런데 다시 뒤집은 거다. 이런 식으로 양국 관계를 관리할 수 없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감정만으로 쉽게 한 결정은 아니다.”
_이렇게 계속 관계가 나빠지면 서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야스쿠니 참배 탓에 고이즈미 총리와 노 대통령 사이가 틀어진 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 갈 테니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등 일본 정치계 주요 인물 7~8명과 조찬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이 (한일 갈등이 불거진 상황을 두고) 엄청 꾸짖었다. 그런데 일본 정치 거물들이 모두 경청하는 거다. 김 전 대통령은 왜 한일관계가 우호적이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안보 주축인 한미 군사 동맹의 유지는 일본이 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이 있다. 상당 부분 일본에 안보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특혜라고 할 수 있다.”
_미국은 왜 아직 가만히 있는 걸까.
“섣불리 나서 누구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둘 다 동맹이고 준비가 덜된 쪽의 국익이나 국가 위상이나 체면에 타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두 나라가 해결하기를 바랄 것이다.”
_앞으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상이 만나야만 풀릴 문제인가.
“만나려면 G20 회의 때 만났어야 한다. 일본 쪽이 회담을 안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정상이 만나기 전에는 상당한 정도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실무 차원에서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성숙시켰을 때 정상이 만나는 게 정상적인 일이다. 당분간 구체적인 안을 내지 않은 채 상대방 동태를 파악하고 워싱턴 중재가 가능한지 타진해야 한다. 지금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나 결투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아직 중세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_소재ㆍ부품 산업에 1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반세기가 남았다. 기초 과학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강연을 위해 이름도 처음 듣는 나고야 지역 한 대학에 간 적이 있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대학이어서 놀랐었다. 한국은 대학원이 부실하다. 고급 인력이 모두 유학파다. 자생력이 떨어진다.”
_정치권은 할 일이 없을까.
“대사로 있었을 때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한일의원동맹이었다. 의원들의 교류ㆍ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가끔 축구 시합을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의원은 선수 명단에서 배제하자’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웃음) 국민 투표로 정치적 리더가 된 인물들이 어떤 지시ㆍ명령 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_한일관계는 어떻게 될까.
“파괴적 결과 없이 봉합되리라고 낙관한다. 그렇게 안 되면 안 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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