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장면이 베트남 현지에 전해진 지 하루만인 8일 베트남 곳곳은 어수선했다. 국민은 분노했고, 현지 거주 한국인들은 사건이 반한(反韓) 감정을 촉발하지나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뚜오이쩨, VN익스프레스, 징 등 베트남 현지 온라인 매체들은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한국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달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매체들은 남편이 ‘서툰 한국말 때문에’ 아내를 때렸다고 경찰에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 네티즌은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가정폭력이 종종 일어난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런 폭력은 종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이 살해되는 등 한국 남편에 의한 베트남 여성들의 피해는 현지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돼 왔으며, 이 같은 문제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른 네티즌은 “당장 이혼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오라”, “베트남에서 가난하게 살아도 악마 같은 사람과 지내는 것보다 마음은 더 편할 것”이라고 뉴스에 댓글을 남겼다. 또 베트남 아내가 맞으면서도 ‘오빠’라고 남편을 부른 것과 관련해서는, “베트남 소녀에게 '오빠'는 아이돌인 줄 알았는데…” 라며 실망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저 영상이 ‘오빠’의 본 모습”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인들이 모두 박항서 감독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한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루옹 륵(38)씨는 “개인의 일탈이긴 하지만 베트남 국민의 공분을 사기엔 충분한 화면이었다”라며 폭행 현장에 있던 두 살배기 아들과 관련해 “아이가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호한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와 한류의 높은 인기, 그리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의 선전에 힘입어 쌓아놓은 한국 이미지에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현지 교민과 기업인 공관들도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를 보냈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출근길에 택시를 타면서 ‘한국 대사관 가자’는 말을 차마 못 했다”며 “대사관 근처 식당 이름을 대고 왔다”고 말했다. 전날 오후 베트남 매체에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한 뒤 온라인을 중심으로 심각한 반응들이 쏟아지자 베트남 국민의 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월요일을 맞아 이날 오전 하노이의 대사관과 호찌민 총영사관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이 사건이 단연 첫머리에 올랐다. 호찌민 총영사관 관계자는 “박항서 감독이 쌓은 한국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깎아 먹게 생겼다는 우려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김한용 하노이 한국상공인연합회 회장도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라며 “이번 일로 자칫 반(反)한국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국민이 잘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많은 기업이 주재원 등 한국인 직원들에게 현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각별한 주의를 당부해 놓고 있다”고 전했다. 윤상호 하노이한인회 회장도 “베트남 네티즌들이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이번 일로 박항서 감독이 2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